태양의 계절. 바다가 좋은 사람들로 바닷가가 넘쳐난다. 육지의 끝이면서 바다가 시작되는 경계인 해변가. 뭍 사람은 모처럼만에 일손을 놓고 한가로운 하품으로 생명력을 길어 올리고, 갯마을 사람들은 한창 장이 서 삶과 노동의 의욕이 크게 열리는 파란 공간.
이 곳에선 충전중인 도시인의 생명력과 이미 심장 박동을 높인 해변 주민들의 힘찬 숨소리가 금모래밭을 함께 활보한다. 생동감이 파도로 넘실대고 있다. 피서철 해수욕장 인근 주민들의 삶의 모습이다.
뭍 사람들과 바닷가 사람들이 서로의 삶의 방식과 문화 등을 한바탕 걸판지게 주고 받는 것도 이맘때.
영덕읍내에서 울진방향으로 4km 정도를 달려 오른편 해안쪽으로 접어들어 다시 10리 길에 위치한 오보·대탄 등 소위 '푸른바다'해수욕장.
내 집 뜰 마냥 작고 오붓한 백사장을 하나씩 갖고 있어 번다함을 피하고자 하는 피서객에겐 안성맞춤이다. 영덕군 간판급인 장사·대진·고래불 해수욕장 등 군 지정 해수욕장과는 달리 간이 해수욕장으로 구분돼 있는 곳.
지난 달 20일 단장을 마무리하고 개장한 이 곳 해수욕장 주변 주민들은 피서철 몰려들 피서객들에 대한 기대와 함께 피서철 경기를 두고 마음을 졸인다.
"전체 51가구 중에 절반인 25가구에서 민박을 칩니다. 여름 한 철 해수욕장에 얼마나 사람이 많이 오느냐에 따라 한 해 마을 인심이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대탄리 이장이자 이 곳 해수욕장 추진위원장인 정봉덕(45)씨의 설명이 그 같은 분위기의 한 일면을 짚어 주었다.
때문에 온 마을 주민들이 무엇보다 신경쓰고 있는 대목은 날씨. 대다수가 어업을 본업으로 해 온 이들이기에 날씨를 눈여겨 보며 사는 생활엔 이골이 난 터수이지만 피서철에는 또 다른 이유로 날씨 올려다보기의 애살이 더해지고 있었다. 주민 모두 경험칙에 따른 기상 예보에 한가닥씩. 8년째 대탄리에서 민박을 치고 있는 한복용(68)씨는 앞 바다를 들여다 보고는 "남서풍이 불면 파도가 자고 북동풍이 불면 파도가 일지"라며 대번 내일 날씨를 점쳐냈다. "작년에 한달동안의 해수욕장 개장 기간동안 주말에 햇볕 든 것은 하루 반나절 정도에 불과했어요"
대탄과 이웃한 오보리 해수욕장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설물 임대사업자로 낙찰받은 토박이 김순용(33)씨의 적자 푸념은 날씨와 피서, 그리고 이 곳 주민간의 상관 관계를 단적으로 방증하는 대목.
그러나 그도 지난번 햇볕 쨍쨍한 주말을 통해 한 차례 재미를 본 탓인지 올 해엔 지난해 적자를 만회하겠다는 의지를 사르며 다가오는 주말 피서객 맞이에 부산하게 돌아섰다.
해녀들의 '물질'에도 한창 손바람이 나고 있었다. 피서객들에겐 해녀들이 따내 온 성게, 전복, 미역 등 그야 말로 갯내음 묻어나는 자연산 해물이 단연 인기이기 때문.
그러나 과거 마을마다 한 집 이상되던 해녀들도 세월따라 '은퇴'하면서 수가 자꾸 줄어 들어 이제 대탄리에서는 10명만이 명맥을 잇고 있었다.
대탄에서 만난 4명의 해녀들도 이미 60을 모두 넘겨 버린 노장 해녀들. 전복 산란기 탓에 7~8개월 동안 물질이 금지돼 최근에야 다시 시작한 이들은 "요즘 젊은 여자들은 하려고 생각도 않고 하더라도 제대로 못한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익혀놓지 않으면 요령부득이란 것이다.
어촌계에서 거둬 가는 시세로도 kg당 6만~7만원씩이나 하는 전복은 익숙한 해녀들에겐 수십만원의 목 돈을 일거에 거머쥐게도 하는 짭짤한 수입원. 그래서일까. 처녀적엔 제주도 비바리였다가 대탄리로 시집 와 일등 해녀로 이름 날리는 고순복(65)씨는 "해녀복 한벌에 15만원인데 물질 한번 잘 하면 건지는 걸 뭐"한다.
해변의 역동성은 해변의 서쪽 배후에 위치하고 있는 영덕읍내에서도 느껴진다. 이른 아침부터 대다수 상가가 문을 열어둔 채 피서객 맞이에 분주하다.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대게탕을 맛깔스레 차려내 온 한 식당 여주인 김모(48)씨는 "요즘 매상이 갑절로 뛰어 올랐다"고 밝게 웃는다.
물론 피서객들의 내왕이 모두에게 기분좋은 일만은 아니다. 특히 일반 주민들에겐 교통소통 불편이 가장 짜증스런 일. 아니나 다를까 7번 국도를 따라 내려오는 취재길에서 영덕군을 나와 강구로 가는 불과 7km 거리가 평소보다 배이상 시간이 소요되고 있었다. 한 영덕 시내버스 기사는 "1~2시간씩 밀려 중간에서 되돌아가거나 이용객들이 걸어가는 경우가 요즘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몰려 든 피서객들의 무분별한 차량 주차와 반라의 거리 활보 등 지각없는 행동들로 주민의 눈살을 찌푸리게도 만든다.
하지만 피서객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은 물론 이와 무관한 평범한 주민들에게도 피서철은 또 다른 기쁨을 선사하고 있었다. 마을 전체 활력의 간접 영향권내에 있다는 점외에도 친지들과의 만남이란'더불어의 삶'이 열리는 때이기 때문. "방학때마다 도시에 나가 있는 아이들이 손주들 데리고 전부 이 곳으로 몰려들지. 걔들에게는 여기가 별장이고 콘도야"
영덕문화원장 신덕용(62)씨는 오는 주말 몰려 올 손주 아이들을 벌써 품은 듯 잔잔한 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비단 그 뿐 아니라 이미 온 동네가 외지에서 찾아 온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읍내 수협에 근무하는 친구덕에 2년째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놀러 오고 있다는 정지용(38)씨는 "친구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이미 여름철 사람 맞이에 익숙한 친구 아내가 더없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이곳에서는 아예 만남과 시간의 편의 도모를 위해 각 학교의 동문·동기회도 8월 초순에 집중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피서철 갯마을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활력과 어울림의 미학이 깃든 채 태양처럼, 파도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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