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토 에세이-서러운 열사에도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슬픈 열사의 끝.

그래, 이브. 이쯤이 좋겠다. 아니 더이상 우리가 도망칠 곳이 없다.

팍팍해진 다리를 멈춰 세우고

너의 거친 날숨과 앙가슴과 허벅지와 오금을 따라 흐르는 땀을 말려라.

몸서리쳐지도록 뜨거운 이 사막위에 나도 배를 깔고

세치 긴 혀를 뽑아 너를 닦아주마.

온통 모래와 열과 태양과 검은 그림자만 숨막히는 이 곳에서

우리가 도망쳐온 그곳에서는 감히 꿈꾸지 못한

슬픈 정염(情炎)을 불살라 보자.

오, 이브. 제발 눈을 떠라. 그대는 이 열사(熱沙)가 두려운가?

우리의 탈주가 시작된 그곳으로 발자국을 되돌리고 싶은 건가?

거기 그대로 서 있어라. 폭염 속에서도 서늘한 내 비늘을 세워

네 귓속에 불온하게 서걱거리는 모래알들을 깨끗이 치워주마.

그래, 이브. 조금만 기다리자.

이제 소름끼치는 밤이 오면

끝간데 없이 서러운 이 열사에도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

후회스런 발자국도 다 흩어지고

식은 네 몸을 가볍게 띄워 이 세상의 끝으로 데려 가리라.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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