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엑시스텐즈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기괴하다 못해 엽기적인 감독이다.그 만큼 독특한 스타일과 주제를 일관되게 주장하는 감독도 드물다. 인간의 육체를 갈갈이 찢는 반문명적 주제의식이 엉겨붙은 피와 살점처럼 묻어난다.

뇌를 조정당하는 '스캐너스', 파리로 변하는 '플라이', 브라운관에 함몰되는 '비디오드롬', 자동차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크래쉬'. 경악하는 관객을 희롱하듯 그는 법의학자처럼 유유히 메스를 들어 인간과 그들이 만들어낸 문명을 해부해 버린다.

평단은 그를 '호러 SF영화의 철학자'라고 부른다.

그의 13번째 영화인 신작 '엑시스텐즈'(eXistenZ·7일 개봉 예정)는 사이버 공간에서 펼치는 가상게임을 해부대에 올려놓는다.

머지 않은 미래. 게임 디자이너들이 대접받는 시대. 디자이너 겔러(제니퍼 제이슨 리)가 신작 게임 '엑시스텐즈'를 시연하려다 테러를 당한다. 경비원 테드(주드 로)의 도움을 받아 도망치던 둘은 테러 위협을 벗어나려고 '엑시스텐즈'속 가상현실로 빨려 들어간다.

크로넨버그가 그려내는 가상현실은 시공이 모호한 기괴한 세계다. '트론''매트릭스'등의 영화들과는 판이하다. 게임기는 매끈한 몸체의 최신기계가 아닌 돌연변이 유기체의 몸체다. 흡사 '네이키드 런치'의 물컹거리는 타자기같다.

게임 참가자는 척추 아래에 있는 구멍에 창자처럼 생긴 관을 연결해 게임을 시작한다. 게임은 생리학 수준에 도달해 신체와 정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까지 무너뜨린다.

'엑시스텐즈'는 관객의 영혼에 상처를 내려는 크로넨버그의 '악취미'가 가득하다. 생선뼈와 이빨, 간과 심장과 창자같은 내장, 물컹거리는 물체, 돌연변이하는 파충류 등 흉칙함과 추함이 있는가 하면 성적인 장면을 연상케 하는 물체들을 빼곡이 집어 넣고 있다.

크로넨버그는 라스트신에 '혹시 영화의 시작부터 모든 것이 게임이 아니었을까'하는 모호함을 남긴다. '나비가 꿈을 꾼 것인지, 내가 꿈을 꾼 것인지', '장자의 꿈'같은 결말이다. 제목처럼 거의 실존적 불안을 느끼게 하는 결말이며, 이 영화가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엑시스텐즈'는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기발한 독창성'과 함께 '가볍고 장난스러운 B급 영화'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만큼 대중성도 있다는 얘기다.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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