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진(金亨珍) 세종증권회장이 사채업자의 심부름꾼에 불과한 중간수집상(속칭 나까마)으로 출발, 채권시장에서 부를 축적해 40세에 중견 증권회사를 인수할 정도로 성장한 배경에는 우리나라 채권시장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국내 채권시장은 시장 자체가 발달되지 못해 장외에서 대부분의 거래가 이뤄지고 거래 당사자들간에 적당한 가격으로 매매가 이뤄지는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있어 구조적으로 부정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감독당국의 설명이다.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의 연 30%를 넘는 초고금리시대와 금융기관퇴출 등으로 빚어진 무보증회사채의 발행이 김형진회장의 경우와 같은 비리를 초래했다.
외국의 경우도 채권의 거래는 주식거래와 달리 투명성이 떨어지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 부정거래자들에 대한 단속이 이뤄졌고 이로 인해 거래 당사자들이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도덕성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상식을 벗어난 거래는 있을 수 없는것이다.
감독당국은 이같은 국내 채권시장의 낙후성을 개선하기 위해 내년 7월부터 채권시가평가제를 도입하고 거래소를 통한 집중거래를 추진하고 있으나 이같은 제도들이 채권시장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채권시장 실태=주식시장의 경우는 상장주식의 수가 8백여개로 고객들의 매도.매입 주문이 증권거래소로 집중돼 전자결제시스템을 통해 계약이 체결되고 그 과정을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어느 증권사를 찾아가도 특정회사의 주식은 같은 가격에 거래하게 돼있다.그러나 채권의 경우는 우선 그 종류가 1만2천종이 넘는다. 기업들은 만기와 발행금액과 표면이율(만기가 됐을 때 지급하는 이자율), 이자지급방법 등이 다른 여러종류의 채권을 일년에도 수십차례 발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채권 매매거래를 거래소로 모아 놓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고객이 증권사를 찾아가면 양측이 합의하는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는 1대1 상대매매로 거래의 90% 이상이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같은 회사가 발행한 같은 채권이 같은 시간에도 증권사마다 다른 가격에 거래된다. 채권거래의 특성상 거래량이 얼마냐에 따라서도 가격은 달라지며 금융기관들이 거래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이들간의 장기적인 거래관계 때문에 거래상대방이 누군가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진다. 결국 투신사 등이 채권을 매입할 때 소수점 이하의 단위에서 다른 회사보다 약간 높게 매입했더라도 이를 트집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른바 공정하고 투명한 가격이 형성될 수 없는 상황이며 따라서 원천적으로 부정이 개입될 소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채권브로커들의 실태=채권시장의 유통구조가 낙후돼 있기 때문에 채권브로커들이 필요하다. 이들은 일반인들이 채권의 가격에 대해 잘모르는 점을 이용, 각종채권을 싼값에 모아다가 투신사 등의 채권부장들을 찾아가 매입해주도록 요청한다.물론 자신들이 사들인 가격보다는 높은 가격으로 투신사에 넘기면서 차익을 취하고 동시에 투신사 채권부장들은 회사장부에 기록하는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이를 매입해 그 차액을 브로커들과 리베이트로 나눠먹는다는 것이다. 증권업계에서는 김형진씨도 이같은 채권 유통구조를 활용해 부를 축적, 증권사를 인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이와 함께 투신사 채권부장을 하고 나면 집한채씩을 살 수 있다는 말이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외국의 경우=미국의 경우 재무부채권(TB)이 꾸준히 매매가 이뤄지고 거래량도 많아 채권시장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 채권의 수익률에 일정수준의 가산금리를더하면 신용등급별 회사채 등의 수익률이 정해지는 관행이 정착돼있다. 따라서 장외에 거래가 이뤄지더라도 일정한 수준을 벗어나는 거래는 당장 들통이 나게 돼있다.다만 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인 정크본드들의 경우는 높은 수익률로 거래가 되나 이는 높은 리스크를 전제로 한 것이다.
▲제도개선 노력과 향후 전망=정부는 또 보다 공정한 가격형성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 93년부터 장외시장에서 거래가 가장 활발하고 실세금리를 반영하는 7종의채권을 표준물로 선정해 이들의 각 증권사별 수익률을 가중평균한 대표수익률을 고시해왔고 94년 7월부터는 10개 대형 증권사로부터 자료를 받아 최종호가수익률을 고시하기도 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채권 거래체계가 다소 객관화되기는 했으나 1만종이 넘는 채권의 거래를 이 정도의 대표수익률 고시로 완전히 투명하게 만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데 감독당국 조차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거래 상대방끼리 적당한 가격에 사고파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또 내년 7월부터는 채권시가평가제를 시행하는 한편 채권거래가 거래소에 집중돼 이뤄지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감독당국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채권거래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채권시장의 투명성은 완벽하게 보장되지 못할 것이라고 감독당국 관계자들은 말했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