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땅에서나마 이루려 했던 50년만의 부자 상봉은 끝내 무산됐다. 이미 불귀의 객이 된 아버지의 사망 소식만 전해 들었을 뿐 아버지는 그림자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작가 이문열의 삶과 의식에 늘 그늘이었던 아버지. 애타게 불러보지만 아버지를 향한 망부가(亡父歌)는 이제 이산의 슬픔을 대변하는 노래가 되고 말았다. 6.25 때 월북한 아버지 이원철(李元喆.84)씨를 만나기 위해 지난 6일 중국 옌지(延吉)행 비행기에 올랐던 소설가 이문열(51)씨와 형 연(59)씨는 7일 옌지 대우호텔에서 아버지가 지난 3월 22일 함경북도 어랑군에서 사망했다는 전화통보를 받고 통곡했다. 헤어진지 50년. 오매불망 그리던 아버지는 남쪽에 두고온 아들들을 보지도 못한 채 이미 이승을 떠난 후였다. 아버지를 만나면 전해주려고 가지고 간 안동소주와 이씨문중 족보, 5대조 문집, 소설 '변경' 등은 오히려 이씨 형제의 가슴을 한없이 무겁게 내리누르는 짐이 되어버렸다.
82년에 이어 지난해 연말 아버지로부터 두번째 편지를 받았던 이씨는 북한측에 방북허가 편지를 보내는 등 아버지와의 상봉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한 끝에 8.15특집을 준비중인 KBS '일요스페셜'팀의 주선으로 6일 옌볜(延邊)으로 떠났었다. 중간연락을 맡았던 조선족으로부터 "만남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7일 오전까지만도 상봉을 꿈꾸며 들 뜬 마음이었으나 청천벽력같은 사망소식을 듣게 됐다. KBS 제작진은 "초등학생 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본 형 연씨는 그 자리에서 통곡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문열씨는 떨려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장례식은 부친이 살던 함북 어랑군 부호리 집에서 치러졌으며 이런 사실은 부친의 친척을 직접 만난 북측 인사로부터 확인됐다"고 한다.
50년 9.28수복 직전 월북한 아버지 이원철씨는 당시 수원농대 관리자로 있다 어머니와 만삭의 아내, 어린 4남매를 두고 단신 월북했다. 북한 농업연구소에서 벼육종과 관개 전문가로 근무해오다 정년퇴직한 것으로 알려진 이씨의 아버지는 북에서 재혼, 아들 만경(35세 추정)씨 등 5남매를 두었다.
지난 92년에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옌지를 방문했던 이씨는 지난해도 금강산 관광길에 부친 소식을 알아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씨 형제는 9일 오전 아버지가 묻힌 땅이 건너다 보이는 중국 투먼(圖們)시 두만강변에서 망제(望祭)를 올린 뒤 10일 귀국할 예정이라고 이씨 가족이 전했다. 지상에서 잠시나마 아버지와 만나는 행복의 순간을 꿈꾸었던 작가 이문열씨. 결국 비극의 현장에 선 주인공이 되어버린 그의 가족사는 50년 분단의 한이 얼마나 깊은지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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