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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지도(보현사 주지)

옛날 스님들은 바랑 하나에 들어갈 정도로 살림이 단출하였다. 대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절에서 사는 사람이라 특별히 필요한 물건이 별로 없고, 그래서 인지 물건을 주고받는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선물을 주면 고맙다는 인사에 인색하고, 때로는 선물을 한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 물건을 필요로 할만한 다른 사람에게 줘 버린다. 선물을 받았으니 이미 그 물건에 대한 처분권은 나에게 있는 것이고 또한 무용지물로 내 곁에 있는 것보다는 필요한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 그 선물을 더욱 값지게 하는 것인데도,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섭섭해하거나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는 감정의 흐름이 이어져있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감정을 담고있기 때문에 선물을 받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 더없이 즐거워진다. 그런데 선물을 주고 난 후에도 여전히 감정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선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선물을 한 것에 대한 기쁨은 더욱 커진다. 소유자는 이미 바뀌었는데도 감정은 연결되어 있어, 선물을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면 성의를 무시당한 것 같아 은근히 불쾌해 지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은 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을 지은 모든 것에 깃들어 있어서, 선물의 행방이나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라 나의 감정은 복잡하게 되어 버린다. 선물을 할 때 상대를 향한 그 순수한 마음으로서 그 물건은 이미 가치를 다 한 것인데도, 그것을 붙잡고 따라 다니면서 갈등하는 것-바로 소유욕이다. 실제 누군가의 행동이나 사물의 변화보다는 그것을 놓아 버리지 못하는 괴로운 감정과 소유욕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밤을 불편하게 보내었던가.

내 마음의 순수했던 애정이 이제는 아쉬움으로 서운해질 때, 돌이켜보면 이런 감정의 흐름이 숨어있다. 자유로와지는 것. 순간 순간 온 정성을 다하지만 돌아서서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 행복의 시간을 이어가는 방법이다. 비어 있는 마음 가득히 밝은 달빛만 싣고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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