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도둑이 큰소리치는 세상

최근 경북 북부지역 한 유도회(儒道會)에서 1년에 두번 개최하는 한시 백일장이 열렸다. 지난 연말 열린 한시대회 운자는 IMF를 반영한듯 암(暗).한(寒)자 였으나 이번엔 전례없이 도(盜).도(道)자가 운자로 채택됐다고 한다.

이날 회원들 중엔 하필 연이어 어두운 자를 운자로 잡느냐는 비난도 있었으나 대다수가 세태를 반영하는 운자라며 그대로 밀어 붙였다는것.

올해는 연초부터 고관집 절도범 김강용에 이어 신창원까지 굵직한 도범들이 잇따라 검거되면서 이들이 공개한 범죄리스트나 일기장 등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특히 이들 검거에 따른 파문이 확산되면서 요즘 일선 경찰서엔 이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자칭 대도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너도나도 大盜행세

경찰에 의하면 대도행세를 하려는 절도범들은 '나는 재벌집만 털었다''고위 공직자의 검은 돈은 누가 주인이냐'고 주장하며 '난세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는 억지주장까지 서슴없이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관공서 고급 간부 사무일을 전문적으로 털어온 20대 절도범이 붙잡혀 또다시 한차례 도풍(盜風)이 일것 같다.

9일 대전 중부 경찰서에 검거된 박철우(27). 그는 경찰 신문에서 "고위 공직자의 현금은 남한테 받았을 가능성이 커 신고하지 못할 것이며 관공서 물건은 마음만 먹으면 내것"이라고 말해 김.신 수사에 혼쭐이 난 경찰을 또 다시 피곤하게 만들었다.

특히 박씨는 5.6월 두달동안 전국 7개 시도청을 대상으로 15차례 범행했으며 모두 국장급 간부 사무실을 털었다고 진술했다.

◈관공서 물건은 내것

그러나 문제는 현금도난의 경우 도난 신고를 한 사람이 없었다는 점.

김강용 검거후 교도소안에 있는 김이 입만 벙끗하면 바깥에 있는 고급관리 몇명이 혼절한다는 말이 또다시 나올성 싶다.

박은 한차례 털었던 대전시청에 다시 들어가 범행하려다 붙잡혔다.

범인 박은 자기 진술에서와 같이 공직자들의 신고 불감증과 공직사회 뿌리깊은 사건 축소 관행을 철저히 이용했다. 경찰은 범인 검거후 관공서마다 도난 방지에 허점투성이었으나 도난사실 보안은 완벽해 박이 15차례나 제집 드나들듯 관공서를 누볐다고 지적한다.

경찰은 전반적으로 만연된 도난 신고기피에 대해 공직자들의 경우 사생활 공개등을 꺼린다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면서도 절도사건 검거율 저조등 내탓도 적지 않다는 이유로 그다지 강경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공직자 상대 도난사건이 잇따르면서 범인검거후 은폐된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자칫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지나 않을까 매우 갑갑해 하는 모습들이다. 특히 김강용 사건을 두고 경찰이 명쾌한 마무리를 짓지 못해 불안한 상태에서 이번 사건이 터지자 계속 얻어 맞을수는 없다는 내부 반발 세력도 만만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록 김강용이 마약중독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의 폭탄선언이 위력을 잃고 말았으나 세간에선 경찰이 언제 어떻게든 마무리를 해야된다는 여론이다.

이번 관공서 절도범 박의 검거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관공서 보안 문제다.

박은 경찰에서 자신이 범행시간으로 정한 낮 12시10분 전후엔 고급 간부 사무실은 비워있었으며 사무실 열쇠가 부속실 책상위에 놓아둔 곳도 있었다고 진술했다.박은 또 마음만 먹으면 돈 뿐만 아니라 문서라도 쉽게 훔칠수 있었다고 말해 관공서 사무실 보안이 허점투성이 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도난신고 않는 공직자

또 피해 공직자들의 도난사건에 대한 해명도 구구각색으로 설득력이 없다.

피해자 7명중 2명은 경찰조사 결과 범인이 130만원과 30만원을 훔친것이 확인됐는데도 도난 당한 사실이 없다고 고집하고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은 액수가 적어 신고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들의 한달 수입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하위직 공무원 두석달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인데도 액수가 적다는 것은 최근 잇따른 공직자 거액비리로 인한 불감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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