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친일인명사전의 위업

금세기 마지막 광복의 달. 우리 학계는 묻혀있었던 현대사의 한 자락을 다시 뒤져 친일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한 위업에 착수했다.민간연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11일 '친일인명사전' 편찬계획을 선언한 것이 그것. 이 작업에는 전국 116개 대학의 교수 1만여명의 지지서명을 받았으며 김준엽(金俊燁) 전고려대총장 등 학계원로 11명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간의 자료를 바탕으로 11월에 본격 편찬작업에 착수, 3년뒤 총 30권의 분량으로 일제 식민통치기간중 왕실 및 그 인척, 정치, 경제, 학계, 여성 등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 친일행적을 보인 3천여명이 수록될 예정이다. 금년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特委)가 친일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된지 꼭 반세기가 되는 해. 민족정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당위가 거론될 때마다 거의 예외없이 프랑스가 드골의 주도로 나치협력자 11만여명을 처리한 사례를 들기만 했던 우리의 입장에선 비록 학계의 조용하지만 의욕적인 이번의 움직임을 가히 '제2의 반민특위'라 불러 손색이 없다. 제헌국회 때인 48년 9월, 일제기간중 반민족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을 조사.처벌하기 위해 국회는 전문과 3장22개조로 구성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이어 구성된 반민특위가 곧 좌초된 사실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우리의 자화상을 다시 들여다 보게끔 한다. 49년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을 비롯, 모두 221명을 기소했지만 1년이 채못된 50년봄까지 실형선고자 7명을 포함, 모든 친일행위 관련자가 풀려났다. 박정희, 유진오, 백막준, 최남선, 장덕수, 김활란, 모윤숙, 이광수, 주요한, 홍난파, 현제명 등등…친일 유명인들이 거명될 때마다 그 배경에는 '평지풍파'를 우려하는 각계의 '우국충정'이 앞서 이들의 어두웠던 행적을 단발성으로 조명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자각된 역사인식만이 이 일을 해내는 추진력이 될 것이다.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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