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의 운세 64괘 끄트머리에 '복(復)'이 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니, 광복(光復)이란 바로 본래의 모습이나 권리를 되찾는 것을 일컫는다. 우리는 54년 전에 광복을 했으니, 우리가 가졌던 것을 고스란히 되찾아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원래의 것을 모두 되찾은 것 같지 않다. 이를 입증해 주는 말이 바로 몇 년 전에 유행한 '역사 바로 세우기'였다. 결국 진정한 '광복'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온전하게 되찾지 못한 데에는 외세 강점이란 외적 요인이 일차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열강들의 이해관계만으로 벌어진 가장 큰 문제가 영토 분단이었다. 땅을 되찾았지만 동강난 것이다. 그래서 남북은 전혀 다른 문화권을 형성하면서, 각각 소련화 혹은 미국화 되어 갔다. 언어도 문자도 생활 방식도 모두 그러했다.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광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외세에 의해 영토 분단
하지만 외적 요인 못잖게 내적 요인 또한 큰 것 같다. 우리 스스로 원래의 모습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부러진 땅 위에 나뉘어 자리잡은 남북의 집권자는 입으로는 통일을, 가슴으로는 분단을 외쳐댔다. 그것을 담보로 남북 모두 장기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해 나갔다. 그러면서 배타적인 정통성 시비를 펼쳤다. 남한에서는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주장해왔고, 북한에서는 단군묘를 만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런 행위는 남북을 붙이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떼어놓는 것이었다.
또 역사의 철저한 과거 반성이 선행되지 못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친일파 청산 문제가 제기되었다. 해방된 그 마당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그러면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야 옳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반성하기 보다는 덮어버리거나 오히려 찬미하는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정권장악과 유지라는 목적 때문에 반민특위가 해산되고, 잘못을 청산하자는 사람을 친일파가 나서서 응징하는 희한한 일이 펼쳐진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 친일파 열전이 연재되다가 어떤 압력으로 중단되는 것을 보면서, 요즈음이 당시 보다 얼마나 다른지 크게 회의하게 되었다.
민족과 종교 문제도 그렇다. 일제는 독립운동 조직이라 판단된 민족종교를 '미신타파'란 명분으로 부수어 나갔다. 단군을 무너뜨리면 여기에 바탕을 두던 독립운동 조직은 쉽게 붕괴되기 때문이었다. 문제의 본질을 모른 다른 일부 종교세력이 일제의 장단에 맞추며 단군 짓밟기에 나섰다. 침략에 앞장서던 일제 종교가 판을 쳐도 말 한마디 않으면서, 오직 단군만 두들기는 현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찌 그리 꼭 같은지.
◈잘못된 과거 청산을
진정한 광복으로 가는 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남 원망할 틈이 없다. 우리 손으로 동강난 땅을 잇고 잘못된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 그렇다고 통일문제를 정략적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나 재야세력 모두가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를 자신들의 헤게모니 장악 수단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또 민주화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싶으면 북한에도 민주화를 요구할 줄 알아야 한다. 남한의 독재자를 비판하면서도 북한의 경우에는 '친애하는 지도자'라고 떠받드는 못난 행위는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정권이 민족보다 앞선다는 생각을 가지거나, 그래서 지조 없이 살아가는 정치인들을 도태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매국 정객이 다시 나오지 않게 할 수 있고, 또 한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인치(人治)사회를 벗어나 법치사회로 갈 수 있다. 여기에 '건강한' 시민단체의 활동과 역할이 기대되는 것이다.
새로운 세기에는 부디 진정한 의미의 광복을 맞고 싶다. 온전히 되찾고, 제대로 반성하며, 새로운 방향을 가늠할 광복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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