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난기류 휩싸인 재외동포법

지난 12일 국회를 통과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하 재외동포법)'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이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재중국 동포 6명은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7일째 서경석(徐京錫) 목사 등과 함께 항의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어 예기치 않은 돌발사태도 우려되고 있다.

◆왜 논란이 일고 있나김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방미시 해외교포의 지위향상을 약속하면서 구체화된 재외동포법안은 당초 재외동포중 외국국적 동포의 정의를 '한민족 혈통을 지닌자중 외국국적 취득자'로 포괄적으로 규정, 적용대상이 외국에거주하는 모든 동포들로 돼 있었다.

그러나 중국 등 민족 문제에 민감한 일부 국가들이 "혈통주의를 내세워 자국 거주민을 재외동포법상의 동포로 포함시키는 것은 주권침해 행위"라며 우리 정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결국 '외국국적동포'의 개념을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했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자'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전체 재외동포 550여만명중 정부수립(1948년) 이전에 이주한 중국동포(조선족) 200만명, 구소련 동포(고려인) 50만명, 일제때 징용 등으로 끌려간 무국적 재일동포 15만명 등 265만명은 법률 적용대상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됐다.

이 때문에 이 법은 전체 재외동포의 법적지위와 권리 확대라는 근본취지는 퇴색한 채 미주지역 거주 동포만 동포로 한정한 차별적 법률이라는 게 시민·사회단체들의 시각이다.

지구촌동포 청년연대 배덕호(裵德鎬) 사무국장은 "재외동포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동포들의 대부분은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던 일제때 항일투쟁을 벌인 독립투사의 후손으로 건국의 숨은 공로자들"이라며 "이들을 배제한 재외동포법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참여연대, 경실련 등 61개 시민·사회 들로 구성된 '동포차별 재외동포법안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우선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에 대해 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대위는 이를 위해 17일 김 대통령에게 관련 서한을 발송했다.

공대위는 또 정부 관련 부처를 비롯해 해외동포 및 국내 관련 단체, 법조계, 학계가 참여하는 광범위한 법제정 논의기구를 구성, 평등한 재외동포법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대위는 이런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재외동포법 철회를 위한 해외동포 및 내국민 상대 서명운동을 펼치면서 문제 법안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법 발효시에는 개정운동을 벌여나갈 방침이다.

◆법무부 입장재외동포법안 마련에 참여했던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통째로 안되면 다 하지 말자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해외동포를 불가피하게 제외한 것은 관계국과의 외교마찰과 조선족 등의 무분별한 입국 등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한 결과"라며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점 때문에 형평성 논란에도 불구, 국회가 정부안을 수용한 것"이라며 일단 시행하면서 법을 보완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중국동포 등에게 혜택을 주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국회를 통과한 재외동포법안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거세짐에 따라 과연 김 대통령이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회통과 법률안을 거부한 전례가 없고 △정부안대로 확정돼 거부할 명분이 약하고 △거부권이 행사되더라도 1차 통과시 출석위원 162명중 156명이 압도적으로 찬성한 점 등을 고려하면 재외동포법은 적지 않은 반발과 논란을 예고한 가운데 그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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