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 한편의 수필에선 막 끓여낸 차의 향기처럼 연한 향기가 묻어난다. 특히 여성 수필가들의 정연한 산문에서는 생활주변의 자잘한 일마저 흘려 버리지 않고, 깔끔한 문체로 풀어내는 섬세함이 느껴진다.
대구 수필문단을 대표할만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정혜옥씨가 다섯번째 수필집 '돌미나리를 찾아서'를 펴냈고, 윤덕자씨가 10여년 동안 써온 글을 책으로 묶은 첫 수필집 '작은 씨앗이 큰 열매로'를, 이복자씨가 칼럼집 '달아 달아 밝은 달아'를 나란히 냈다. 필력은 서로 다르지만 이순(耳順)을 훌쩍 넘긴 노년과 중년의 여성들이 일상과 가족·이웃· 고향·자연·사회의 다양한 면면들을 어떻게 보고 글로 옮겨내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갖가지 사연들과 체험들을 맛깔스런 문장으로 풀어내는가 하면, 때로 살아온 삶의 무게만큼 덤덤하게 세상을 읽어내는 모습이 수필 한편 한편에서 감지되기도 한다.
정혜옥씨의 이번 수필집은 이제까지의 글 작업을 일차적으로 결산해보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난해 출간한 수필선집 '풍금소리'와 함께 지난 45년 동안의 글쓰기를 기념해 작가 표현대로 하나의 '매듭'을 짓는 뜻에서 정성을 들였다. 93년에 낸 수필집 '우체국 앞을 지나며' 이후 쓴 글들을 묶고, 책말미에 작품연보도 실었다. "한때 문학한다는 것이 싫어져 글쓰기를 중단했다"는 정씨는 '전쟁일기' '바다의 선물'과 같은 글을 접하고 산문에 매력을 갖게 되면서, 시로 출발한 문학여정을 수필로 옮겨 오게 됐다고 고백한다.
정씨의 수필은 조금은 쓸쓸하고 적막한 색조를 띠고 있다. 우울하고 아름다운 수필을 지향하는 작가의 꿈이 반영된 때문일까. 천년만년을 버티고 서있는 삼층탑이나 헌책방, 돌콩같던 시골장의 아낙, 사금파리가 나뒹구는 옛집터, 나무장사 등에서 이런 분위기가 배어난다. 또 유년시절의 기억과 전쟁의 상처, 남도 고향땅을 가로질러 흐르는 남강에 대한 추억 등도 이에 한 몫 한다. 하지만 일상 가운데 미처 깨닫지 못하고 흘려버렸던 일들을 소중하게 담아내는 지혜는 그의 수필이 갖는 미덕이다.
윤덕자씨의 첫 수필집 '작은 씨앗이 큰 열매로'는 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발표한 글들을 모았다. 못생긴 아이를 남들 앞에 내놓는 기분이라 망설이다 책으로 묶어 냈다는 머리말이 눈에 띈다. 고사를 통해 삶의 지혜를 되새김하거나, 이웃과의 소중한 인연과 인정을 그리워하고 세태를 성찰하는 수필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지난 몇년 동안 일간지와 생활정보지에 실은 칼럼들을 묶은 이복자씨의 산문집 '달아 달아 밝은 달아'에는 생활 주변의 일들과 사회의 갖가지 문제들을 확대하듯 들여다본 칼럼 70여편이 담겨 있다. 칼럼이라는 용어가 주는 이미지가 그렇듯 간결하면서도 힘을 실어내는 글의 전형을 만날 수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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