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도 '부패방지 기본법'을 금년 정기 국회때 제정키로 했다는 소식이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의 부패도가 더 이상 두고볼 수만 없는 정도에 이르렀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부정과 비리는 경제적 풍요를 달성해 갈수록 심해지는 경향을 보여주었다.그렇다면 과연 사회의 경제적 풍요와 도덕성의 정도는 일치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의 경제적 풍요와 더불어 도덕성도 더욱 고양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다음 제시문을 참고하여 논술하시오.
(가)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충성스럽고 신망 있는 사람에게 녹(祿)을 넉넉히 주는 까닭은 선비를 권장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는 깊은 뜻이 있다. 남의 윗사람 된 자가 아랫사람에게 녹을 넉넉히 주지 않으면 선비된 자가 무엇에 힘입어서 염치를 기르겠으며, 또 이욕 때문에 부끄러워지는 짓을 무릅쓰고 않겠는가.
그러므로 나라에 벼슬했던 옛날 군자들은 그 녹이 자기의 욕구를 채우기도 넉넉했고, 그 봉급이 처자를 보살피기에 넉넉했다. 그래서 백성들과 더불어 이익을 다투지 않았으며, 뇌물을 받지 않고도 부모를 섬기거나 처자를 거느릴 여유가 있었다. 한가롭고 편하게 지내면서 자기의 포부를 펼쳤으므로, 하는 일 없이 녹이나 먹는다는 나무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염치가 확립되고 풍속의 교화도 도타웠으니, 옛날 훌륭했던 시대에는 대개 이 법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자가 반드시 많은 것은 아니었으며, 제 몸만 이롭게 하는 자들이 넘쳐흘렀다. 윗사람이 나를 두텁게 대우했으니, 내가 윗사람을 어떻게 받드는 것이 마땅했을까.
허균, '후록론(厚祿論)' 중에서
(나) 나는 경제적 발전은 도덕적 진보를 가로막는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고대 사회는 재력을 증진시키는 활동에 제한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모든 경제적 야심에 대해 아무 제한도 없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국민들 사이에 오직 돈벌이만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으로부터의 타락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는 거부(巨富)들 중에서 기꺼이 가난하게 사는 걸 고귀한 생활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는데 이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러분이 신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것은 가장 심오한 경제적 진리이다.
유럽 국민은 오늘날 물질주의라는 악마의 발굽 아래 신음하면서 자기 자신의 도덕적 향상을 저지해 버렸다. 그들은 자기의 진보를 돈으로 계산한다. 미국에서는 돈을 버는 것이 국민들의 목표이다. 그리하여 세계 여러 나라 국민들로부터 질투를 받고 있다. 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미국의 재물은 원하지만 그 수단은 피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만일 그런 입장에서 실제로 일을 추진해 나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반드시 실패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동시에 '현명하고 양순하며 또한 곧잘 격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 "경제적 발전과 도덕적 진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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