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문 칼럼-대학 개혁과 자기반성

얼마전부터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대학개혁의 추진으로 대학계가 혼란과 진통을 겪고 있다. 한국의 대학이 큰 개혁을 해야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것은 한국에서 최고라는 대학까지도 세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에서도 상대적으로 크게 뒤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개혁에 뒤따를 불가피한 혼란과 진통을 피하고 기득권을 보존하자는 동기에서 대학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이 있더라도 개혁은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대학개혁이 아니라 어떤 취지에서, 어떤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대학개혁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대학교육철학에 문제가 있다. 개혁안은 고급기술자 배출이 대학의 기능으로 전제하고 있다. 세계문명에서 낙후되지 않으려면 치열한 국제시장에서 탈락되지 않아야 하고, 그러자면 우수한 과학기술의 개발은 절대적 조건이다. 경제적 목적달성만이 교육의 목적일 수 없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고급기술자의 생산만을 염두에 둔 대학개혁은 잘못이다. 기초과학이 열악한 대학에서 정말 창의적인 과학기술발명은 불가능하고, 인문학적 토대가 열악한 문화적 풍토에서는 창의적·과학적 발견을 기대할 수 없다.

둘째, 더 중요한 문제는 정부의 개혁안이 구조적인데만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의 구조적 개혁은 입시철폐로서, 입시제도로 야기되는 경제적 낭비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제거하고, 그런 제도가 동반하는 주입식 교육의 폐단을 극복하자는 것이며, 선택적으로 소수 대학들에 집중적으로 경제적 투자를 함으로써 그곳의 정예 과학자들이 물리적으로 자유롭고 편안한 조건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국가적 및 대학내의 차원에서 구조적으로 재조직하자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소외되는 대학이나 대학교수들이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위와 같은 개혁은 원칙적으로 옳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은 어디까지나 구조적, 즉 외적인 개혁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고, 이러한 외적 개혁만으로는 한국의 대학이 명실공히 일류대학으로 결코 발전할 수 없다. 한 대학이 아무리 좋은 건물을 짓고,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추고, 아무리 많은 연구비를 얻어 오더라도, 뛰어난 교수와 학자들이 없으면 그것들은 무용지물이며, 잠재적으로 뛰어난 교수와 학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그들이 실제로 구체적인 학문적 연구결과를 창출하지 않는 한 그들의 우수성은 무의미하고, 진리에 대한 열정을 갖고 헌신적으로 자신의 연구에 몰두하지 않는 한, 창의적이고 우수한 학문적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국가와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대학에 있어서의 연구시설의 개량, 교수와 연구원의 연구비 증폭과 대우개선 등은 어디까지나 학문적 연구의 성과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첨단기술로 지어진 화려한 건축물로 채워진 대학에서 보다는 낡고 허름한 건물이 드문드문 들어선 대학에서도 보다 우수한 학문적 성과가 나올 수 있으며, 고가의 연구시설로 꽉 채워진 연구실에서만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시설을 가진 연구실에서도 보다 획기적인 발견과 발명을 기대할 수 있다.

연구소 설치, 연구실 설비, 학회 조직, 연구소나 학회의 감투, 연구비 액수, 국내외의 학회 참석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한 대학교수는 그러한 것들의 숫자로서가 아니라 그가 이룩한 연구업적에 비추어서만 평가되어야 한다. 총장을 비롯한 보직자들의 위치와 권위는 교수들의 연구업적과 학문적 권위에 종속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한국 대학의 철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가시적인 구조적 개혁과 아울러, 아니 그에 앞서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개혁이 필요하다. 연구중심대학의 경우 더욱 그렇다. 참다운 학풍이 아쉽다.

포항공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