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지도(보현사 주지)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다 한차례 비가 퍼붓자 선뜻 가을이 느껴졌다.

아직은 낮 기온이 한더위지만 풀 죽은 듯한 매미소리는 이 여름도 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동화사 금당(金堂) 너머 채마밭에는 고추가 하나 둘씩 빨간 색을 조금씩 드러내고, 새벽의 바람은 높은 하늘을 지나왔음을 살갗으로 느낄 수 있다.

여름은 더워야 여름이고 여름이기에 더울 수밖에 없는 평범함을 우리는 곧잘 잊고 사는 것 같다. 물고기가 물에 있을 때 자유로울 수 있듯이 인간은 항상 걱정과 근심이 있어야 세상사는 다움에 겨워한다. 그래서 세상을 고해(苦海)라 하는가. 하루도 걱정과 근심을 하지 않는 날이 없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런 것들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이런 삶을 평범함이라고 하나 보다.

그런데 때로 이런 평범함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은 내 생각이나 요구에 맞지 않을 때 느끼게 되는 것이니, 불만족스러운 삶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면 평범함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계절이 변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삶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싶다. 덥다고 항상 더울 것 처럼 투덜대던 여름이 막상 어김없이 가을을 내어놓는 것을 보자 숙연함조차 느껴진다고나 할까.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는 평범한 모습처럼 세속의 때를 벗어 자유인으로 자연스럽게 거듭나고 싶다.

여름이 가을을 남기듯이 우리의 삶에도 가을이 찾아오리라. 생(生)이 있어 사(死)가 있듯이 삶과 죽음이라는 것도 별로 걱정할 바가 아닌 듯 하다. 죽을 때 돌아본 나의 삶은 자연스러운 기다림으로 이어져 있어서 그리 까탈스럽지 않았던 삶이었으면 싶다.

달을 동경하듯이 상념(想念)으로만 머물러 있는 도(道)나 문득 기적처럼 이루어지는 소원에 매달리기 보다는 오히려 고해의 평범함 속에서 맑고 밝고 바른 생활로서 자연스럽게 한 발짝 한 발짝 성실히 나아가는 여름이면, 이해하고 용서하는 기다림의 인연이 과일처럼 영글어질 가을이 있기에 지금은 지금으로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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