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 부인들의 상도(常道)를 넘어선 행각과 '안방 로비'와 관련된 의혹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주리라던 기대와는 달리 옷 로비 청문회의 소출이 별로 없자 TV를 지켜본 시민들의 반응에는 냉소와 흥분이 교차됐다. 더구나 검찰수사에 짜맞추려는 듯한 태도로 진실 접근을 오히려 방해하거나 고위층 얘기만 나오면 과민반응을 보이는 몇몇 여당 의원들과 근거나 뚜렷한 증거도 없으면서 정치공세로 일관하는 일부 야당 의원들의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옷 로비의 주요 타깃으로 지목된 김태정전법무장관 부인 연정희씨에 대한 심문이 벌어진 24일에는 이같은 현상들이 압축돼 나타났고 시민들의 비난 여론도 거셌다. 자연히 언론사와 여야 각 정당 사무실 전화는 이날 낮 한 때 마비사태를 빚을 정도로 불이 났다. 전화 내용은 청문회 무용론에서부터 일부 증인 감싸기.의원들의 준비 부족과 함량 미달 질문 등 비난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고 야당으로는 간혹 격려성도 있었다.
○…신문사에는 청문회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대부터 시민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이들은 "국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길바닥에 나앉는데 장관 부인이라는 사람들이 수천만원짜리 옷을 걸치고 쇼핑, 쇼구경을 하러 떼지어 몰려다녀도 되는 것이냐"는 울분섞인 전화도 있었지만 "저런 청문회를 왜 하느냐""이미 다 나온 이야기를 왜 다시 하느냐""뻔뻔스런 사람들의 해명을 듣기 위해 자리를 깔아줄 것 같으면 뭣하러 하느냐"는 등 주로 청문회 무용론에 가까운 것이었다. 여야 각 정당의 대구.경북지부 사무실에도 전화가 한 때 불통이 될 정도로 시민 여론이 여과없이 전달됐다. 여당 쪽에는 청문회 무용론과 함께 증인(주로 연씨)을 두둔하고 질문보다는 해명의 기회를 주려는 듯한 몇몇 여당 의원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야당시절 투사로 이름을 날리던 의원들의 변해버린 태도에 대한 실망과 분노의 내용도 없지 않았다. 가뜩이나 지역적으로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에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청문회까지 겹쳐 '상승효과'를 나타내자 여당 쪽 사람들은 이를 해명하느라 하루종일 진땀을 흘렸다.
야당 쪽에도 비난의 전화가 더 많았다. 일부 의원들의 끈질긴 추궁으로 증인을 궁지에 몰아넣을 때 격려성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으나 주로 "서로 짜고 하는 것 아니냐. 여당 의원들이나 한 통속"이라거나 "그런 식으로 밖에 증인을 다루지 못하느냐""좀 더 매섭게 추궁하라"는 등의 독려반 비판반의 내용들이었다.
○…'옷로비'청문회를 지켜본 시민들은 증인들의 엇갈린 진술과 계속된 자기합리화, 진실규명보다 당리당략을 앞세우는 듯한 여야 의원들의 질문 등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옷로비'사건이 IMF 경제위기로 서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시기에 일어났으며, 이때 정부가 '고통분담'을 호소했었다는 점에서 권력층과 재벌 등 가진자에 대한 '위화감'을 넘은 '배신감'마저 나타내고 있다.SK텔레콤 대구지사 우태혁(28)씨는 "증인들의 답변태도에 분노를 느낀다. 거리에 실업자가 넘치고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자살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고위공직자 부인들이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옷을 사러다니고도 반성은 커녕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회는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국민들의 의구심을 반드시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동철(51.공무원)씨는 "고위공직자 부인들이 보여준 행태는 이미 국민감정을 충분히 자극했다. 뻔한 내용을 자꾸 되풀이해 듣는다는게 짜증스럽다. 고위직 부정부패를 근절할 근본적 장치를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이철수(34.교육선전부장)씨는 "진실규명 보다 증인의 자기합리화, 정당간 당리당략에 청문회가 이용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노동자의 고통의 대가로 '가진자'들이 배만 불렸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민다"고 소감을 밝혔다.시민.사회단체들은 제도적 보완을 주장했다. 민영창 대구경실련 사무처장과 김중철 대구참여연대 사무국장은 "여야간 당략과 수사당국의 자료제출 거부로 청문회가 한계에 부딪쳤다. 청문회보다 특별검사제를 통한 철저한 재수사로 관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일화 변호사도 "야당의원은 소문에 따라 한건주의식 폭로에 매달리고, 여당의원은 사직동 내사와 검찰수사 결과에 맞춰 '짜맞추기식' 질문으로 청문회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1.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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