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시간 제한이 아직 풀리지 않았던 재작년, 선술집 주인이 제딴엔 큰 빽이랍시고 하소연을 했다. 동네 파출소에서 걸핏하면 술.밥간에 괴롭히니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것이었고, 어떻게 좀 해줄수가 없겠냐는 것이었다.
◈빽없는 서러움
취객이야 "딱 한병만 더!" 하다보면 밤12시가 휘딱 넘게 마련인데 이게 걸핏하면 '시간외 영업'이요, 항용 있을 수 있는 술싸움에 경찰이 끼여들면 그날 장사는 뒷전, 파출소에 왔다갔다 시달려야 했다.
잘못에 대한 벌칙은 당연한 것이긴 했지만 이 파출소의 까탈은 유난했던 것이다. 심지어 파출소 의경인지 젊은 친구들까지도 나쁜 것부터 배운 탓인지, 도둑 제발 저린다고 맥주 몇병 들고 찾아가면 "우리가 금붕어인줄 아느냐"며 안주타령 해대는 식이었다니, 술 좀 마셔본 분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눈에 훤히 들어올 것이다.얘기 듣다보니 울화통이 치밀어, 변학도 때려잡는 이도령처럼 "내일 당장 상부에 일러서 요절을 내 주마"고 했는데 아침에 술깬후 곰곰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자네가 이 장사를 그만 두겠다면 당장 해결해 줄게. 하지만 예서 장살 계속하겠다면 파출소 하나 건드려봐야 인수인계에 너만 손해니 참으라"
법률상 처녀였던 30대의 이 마담이 결국 못견뎌서 치웠는지, 눈맞아 떠났는지는 모르나 지금은 없다. 그때 이 언니의 넋두리가 "내 참 더러워서!"였다.
훈장을 반납한 '씨랜드 어머니' 김순덕(33)씨. 첫 아들을 화재사고로 잃은뒤 정부의 사후처리에 절망, 훈장반납과 이민을 결심한 전국가대표 여자하키 선수다.
"하나 남은 아이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국무총리 면담요청을 거듭 거절당하고 집에 돌아와 화단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동안 '이 정부에서 받은 훈장을 그렇게도 자랑스러워 했다니…' 생각하니 목이 메어왔다"는 그녀. 절망의 깊이가 얼마나 깊었으면 김총리의 뒷북친 면담(23일)후에도 이민결심을 꺾지 않았을까이 사회에 대한 절망. 배신감의 한 끝에서 들려오는 이 소리 또한 '내 참 더러워서'와 맥락을 같이한다.
◈더러워서(?) 피한다
서글프게도 이 땅에는 무서워서 피하는 것보단 더러워서(?) 피한다는게 더 많다. 국세청.경찰.법원.검찰.안기부(지금은 국정원). 심지어는 우리 언론까지도…. 이 말은 강자.치자(治者)에 대한 약자(피치자) 변명, 속상한 자존심의 절규에 다름아니며 그것은 이어 "다음에 보자"는 한(恨)으로 쌓여가는 것이다.
불공평.불평등.부정(不正)의 용어로 굳어버린 "내 참더러워서!"의 또하나의 사례-. 10년전 11월 서울지검이 회심의 역작인양 발표, 전국민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던 소위 비식용 우지(牛脂)라면 사건이 그것이다. 이 보건범죄는 당시 삼양.오뚜기식품.부산유지 등 5개 식품업체의 존립을 뒤흔들면서 회사간부 10명에게 중형을 내렸지만 대법원이 97년 무죄를 확정하면서 검찰의 입장이 우습게 돼버린 사건이다.
당시 검찰이 '비식용'이란 문구에 집착, 상황을 그르친 이 결과는 멀쩡한 1개 기업의 도산, 삼양라면의 대추락으로 이어졌다. 더우기 우습게도 이 사건은 라면업계로 하여금 쇠기름보다 값도 싸고 지방산 조성면에서도 쇠기름보다 떨어지는 팜유(동남아 열대식물) 사용을 50%에서 100%로 확대시킴으로써 지금 가축은 우지(배합사료에 100% 사용)를 먹고 사람은 팜유를 먹는 상황을 만들었다. 일본의 고급라면은 사실 돼지기름 튀김이다.
◈'이 땅을 떠나고 싶다'
그러나 이처럼 엄청난 피해를 본 업계와는 달리 수사를 맡았던 검사들은 시말서 한장 쓰기는 커녕 오히려 당시 부장은 검사장으로, 평검사는 부장검사로 승진가도를 질주하고 있으니 업계로서야 "내 참 더러워서!"가 아니겠는가.
손해배상 소송을 하면 되지않느냐는 반문에 "억울한 옥살이 제값 쳐줍디까? 또 사업을 계속중인 판에 검찰 눈밖에 날 일 있나요?" 우리의 선량한 이 백성은 그래도 자기를 족친 검사를 최근 검찰청 마당에서 우연히 만났을때 '아이구, 영감님'하며 허리가 90도로 꺾여지더라고 했다. 세상은 이렇다. 부디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푸념이 나오지 않게 정치권 아닌 곳에서나마 좋은 소식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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