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이래 무엇을 해 왔는지 묻는다면 '한국을 미국화한 것 뿐이다'라고 말하겠다. 새로운 경제 회생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이나 미국계 투자은행들이 시키는 대로 나라의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최근 일본의 정치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가 극우잡지로 알려진 '사피오'지에 기고한 칼럼의 일부다. 오마에는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질서와 하청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산업 수준 등을 한국 경제가 일어설 수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국내 지식인 사회에서는 '속 쓰린 지적이지만 현 정권의 잘못된 노선을 꼬집었다'는 평가와 '한국을 일본 중심의 신대동아 경영권에 편입하려는 다분히 한국 비하적인 발언'이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1년9개월간 신자유주의식 경제개혁 노선을 지속해 왔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물론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표방한다고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학계는 현 정부가 시장경제의 기능과 효율성 만을 강조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노선을 신봉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내세운 대량실업, 기업 경쟁력 강화를 표방한 기업 해외 매각, 잇따른 무역·자본 자유화 조치 등을 그 이유로 꼽고 있다.
한국의 경제개혁에 대해 국내외 세력들이 자기 이해를 반영한 비판과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정부도 '생산적 복지'를 천명하는 등 사회경제 개혁노선의 변화를 시사했다. 재벌 개혁과 함께 왜곡된 소득분배구조를 바로잡고 중산층 이하 서민들을 위하는 복지정책을 펴겠다는 뜻이다. 'DJ노믹스에 DJ가 없다'는 말을 지식인 사회에 유행시켰던 경북대 김영호 교수는 이를 'DJ가 DJ노믹스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노선 변화는 경제정책에 대한 국내외 비판뿐 아니라 심화되는 사회불평등에도 원인을 두고 있다. 한국개발연구회는 최근 조사에서 월소득 85만8천원 미만으로 빈곤선에 머무는 근로자 가구(4인기준)가 97년 3.0%에서 98년 6.8%, 99년 1/4분기 6.9%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99년 1/4분기 소득상위 20%의 평균소득은 전분기보다 9.2% 증가했으나 하위 20%는 3.3% 감소했다는 것. 고용불안과 소득감소로 근로환경이 크게 악화되자 지난 1/4분기 '과로사'한 산재사망자는 지난해 동기 대비 2배인 168명에 이르렀다.
현 정부의 복지중심 노선전환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역사비평 가을호에서 "복지국가는 국민들에게 나눠줄 자원이 있을때 가능한데 IMF 국면에서 이같은 일이 가능할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경쟁력 강화와 민주주의, 사회적 통합을 함께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환상일 뿐'이라는 사회학자 다렌도르프의 견해를 인용했다. "생산적 복지국가와 민주적 시장경제의 동시 달성은 불가능하며, 정부의 노선전환론은 중산층 재통합을 위한 정치적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논란의 중심에는 21세기 한국이 어떠한 사회경제체제를 택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담겨있다. △국제투기자본 및 국내외 대기업의 고수익과 주가상승을 위해 정리해고, 소득감소, 근로여건 악화를 강요하는 영국형 △ 현재 한국 입장으로선 불가능하지만 해외시장 또는 미국·유럽시장과 단절하는 말레이시아형 △가장 어렵지만 국내 개혁 성공을 바탕으로 국제경제질서 개혁에 동참하는 형 등으로 선택 방향을 좁혀볼 수 있다.
한국이 어떠한 체제를 선택해도 결과는 세계 경제와 밀접히 연관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연관 고리가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대구라운드는 채권-채무국간 평등한 외채질서를 지향하는 운동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국내 개혁과도 무관치 않다. 이같은 국내 개혁문제를 새로운 논의의 틀에서 생각하고 실천방안을 구상해 보자는 시민운동이 10월 열리는 대구라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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