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주영세상읽기-불행한 어머니들을 위하여

경제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우리나라가 50년전에 있었던 전쟁의 후유증으로 시작된 해외입양의 수효는 아직까지 줄어들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전쟁의 포화가 지나간 지 50년이 흘러간 지금도 해외 입양 순위 1등국이라는 불명예를 씻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전 미국으로 가는 여객기를 탄 적이 있었다. 여객기에 탑승하자 마자, 3등칸 맨 앞 좌석 복도 바닥에 옹기종기 진열된 종이상자를 발견했었다. 상자 안에는 아직 젖을 떼기에는 이른 앙증스런 모습의 영아들이 고무 젖꼭지를 물고 누워 잠들었거나 혹은 칭얼대고 있었다.

아기들마다 낯선 외국인 보모들이 한사람씩 배치되어 있었다. 아기가 칭얼대면 그들 보모들이 울음을 달래주려고 진땀을 흘리던 모습과, 즉석 조리식품을 담았던 종이상자의 상표와 모양새까지도 아직까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바로 면전에서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나는 그 길고 길었던 탑승시간 내내 계면쩍고 모멸스러우며 뭔가 억울하고 가슴 답답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 여객기 안에 탑승하고 있는 승객 대다수는 한국인들이었고, 어쩐 셈인지 여성들이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맨 앞 좌석 복도 바닥에 누워 있는 아기들을 발견하고 애써 외면하려 들거나 아니면 안중에도 두려하지 않았다. 목적지가 가까워 오면서 기내에서 판매되었던 면세품들이 거의 동이 나버렸던 것도 그때 겪었던 부끄러운 기억 중의 한가지다.

그때, 미국가는 비행기의 즉석식품 종이상자에 실려갔던 입양아들이 이젠 어엿한 입양인으로 성장하여 수시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그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대개의 목적은 생모를 찾기 위함이다. 잊혀졌던 뿌리를 찾아야 하겠다는 그들의 간절함에 감동받은 벽안의 양부모들도 금전적 손실을 감내하며 기꺼이 동행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방법을 통해서 생모들의 소재를 탐문하고 있으나 만남의 실적은 매우 저조한 편이란 얘기를 들었다.

생모의 소재가 분명하게 파악되었는데도 생모가 생모인 자체조차 부정하거나 만나주지 않기 때문이다. 양부모들의 슬하에서 어린 날을 반듯하게 자라 그 나라에서도 고급 두뇌로 평가받을 만큼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그들은 생모들의 완강한 부정과 뿌리침을 이해할 수 없어 한다. 생모가 저질렀던 과거의 입장을 그들은 벌써 이해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한 번 만나보는 것으로 가슴에 맺힌 회한을 풀려는데도 생모들 편에서 마음의 문을 열려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입양인들에게 또 한 번의 실의와 좌절을 안기는 결과로 나타난다. 자신들의 양육을 포기할 밖에 없었던 애꿎은 처지를 이해하고 또한 지금 이 시각 생모들이 갖고 있음직한 처지조차 이해하기 때문에 여러 방법의 만남을 주선하려 하지만, 그런 만남조차 이루어질 수 없는 입양인들의 끝모르는 수렁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또 다시 부끄러운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우리나라의 어머니들은 자기가 낳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혹은 그 애틋함이 남다른 것으로 평판이 나있다. 그것은 본래의 천성에도 기인하겠지만, 삶의 질곡과 고통이 또한 남달랐던 나라의 백성이었으므로 얻어진 결과였기도 하다. 우리가 시달리고 부대껴 왔던 불행을 한 개인의 불찰로 돌리기엔 너무나 벅찼던 역사의 질곡을 우리는 겪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부끄러워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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