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 버머'라는 별명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카진스키가 최근 '바보들의 여객선(Ship of Fools)'이라는 소설을 옥중 집필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의 폐해를 파헤치고 사회혁신 운동가들을 풍자한 소설로, 정신이상자인 여객선 선장은 기분내키는대로 운항하고 승객들은 자기 주장과 불만만 토로하는 상황에서 결국 여객선이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고 탑승자는 모두 사망하는 내용이라 한다. 카진스키는 19세에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4세에 버클리대 조교수를 지낸 천재 수학자인데, 과학기술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감에 젖어 대학연구소들에 우편폭탄을 송달시켜 3명을 살해한 사건의 장본인이다.
우리는 이른바 과학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다. 테크놀로지 성과를 한껏 향유하면서도 한편 테크놀로지로부터 위기를 실감하기도 한다. 현대문명 위기의 징후는 자연자원의 고갈과 생태계 파괴로부터 나타났고, 사태의 원인을 무모한 자연개발의 결과로 추적하여, 그 바탕을 제공한 과학과 기술에 대해 고도한 편중발달로 진단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에 의한 자연정복, 대규모의 개발행위, 생산의 공업화, 상품의 대량소비 등이 인간 중심적 개념에서 비롯되었고, 인간 편의적 목적성취를 위해 과학기술을 수단으로 자연 및 인위적 환경을 도구적으로 활용해 왔다는 점이 반성의 몫인 것이다.
거선의 추진력 증진을 위해 돛을 높이고 엔진 성능을 초고속화 하기에 여념이 없어서 조향장치나 제어기능 개선을 외면한 나머지 인류의 뱃길을 잘못된 방향으로, 위험불감증의 급발진을 계속하고 있기에 카진스키는 폭탄테러로 이를 저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인간을 위해 자연을 향해 던진 부메랑이 급기야 인간을 괴멸하려는 듯 되돌아 날아 오는 오늘, 새 밀레니엄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긴요한 시점인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떠오른 유일한 대안이 생태개념이며, 기술문명의 테크노피아가 생태학적 디스토피아로 증명된 지금 망상의 '유토피아'에 줄설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공존적 관계 설정에서 조화로운 삶이 이루어지는 생태학적 유토피아, '에코토피아(ecotopia)'의 길을 걷자는 발상이다. 즉, 인간 중심적 사유체계에서 생태중심의 신사고 체계로의 전환, 근대성의 다시 짜기(탈근대) 작업이다.
생태건축에 앞선 장황한 서설의 연유는 오늘날 우리가 생태와 관련된 어휘를 지나치게 남용하고 그나마도 오용하는데 따른 안타까움에서 기인한다.
이른바, '환경친화적' '녹색환경' '그린 빌리지' '지속 가능한 건축' 등으로, 시대를 앞서 간다는 진보적 입장에서 누구나 입에 담기 즐겨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지속 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의 초점은 '계속적 개발'에 있지 않고, '개발의 절제'에 따른 '개발 가능성의 담보'에 있는 것이다. 세계환경개발위원회는 '인류가 자신들의 필요를 위해 미래 세대들의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현재의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보증하는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오늘의 개발우선 논리는 차세대에 대한 월권행위임을 경고하고 있다.
생태학(ecology)이란 "유기체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과의 연관관계에 대한 총체적 학문이며, 광의의 외부환경 속에는 모든 생존조건을 포함시킬 수 있다"고 독일의 생물학자 핵켈(E·Hackel)이 밝혔다. 이러한 생태학을 건축에 접목시키려는 움직임이 생태건축이며, 합리성과 경제성의 기치아래 자연파괴를 일삼은 근·현대 건축의 대안으로 자리한 것이다. 기존건축은 자연환경을 극복하는 계획개념으로 자연자원을 낭비하고, 에너지와 물질을 소모하여 유지·관리비의 증가를 초래하며, 발생시키는 동시에 환경오염을 초래하는 경향이 일반적이었다.
오죽하면 '이 시대의 가장 훌륭한 건축행위는 건축을 하지 않는 일이다' 라는 비아냥의 자성이 있기도 하랴. 그러나 생태건축은 건축이 자연 생태계의 일부로서 자연자원을 해악없이 활용하며 토양·물·태양·공기의 고전적 4요소를 주 순환체계로 연계시킴을 시사한다. 궁극적으로 인간 생활무대인 건축환경을 인위적 생태구성 체계로 보고 이를 자연생태계에 유기적으로 통합시키는 개념인 것이다.
도시지역에서는 주로 그린빌딩이란 이름으로 고효율 에너지 설비, 에너지 부하저감, 자원재활용, 환경공해 저감기술 등을 적용해 건설하고 유지관리하며 해체 후에도 환경피해를 최소화 하도록 계획된다. 외곽지역에서는 환경친화의 목표로 자연지형 활용, 일조 및 일사 고려, 바이오 톱 조성, 친수공간 조성, 우수이용, 폐열회수, 건물 및 단지녹화 등으로 자연환경을 적극 수용하는 계획으로 이루어짐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업성 논리로 악용되는 도심아파트의 황토시공이나 하이테크에만 의존하는 고도의 인위적 환경창출은 근본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이는 들꽃을 자연에 두지 않고 나의 화병에 꽂음이며,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인위적 생명체 탄생을 기뻐함과 다름아닌 것이다. 오히려 주술적 사항을 배제시킨 풍수지리이론, 석굴암과 해인사 경판고의 내부환경 조절기능, 전통마을의 자연과 조화로운 배치 등이 훨씬 생태건축 개념에 가깝다할 것이다.
오늘의 생태건축이 현대과학문명의 틀 안에 존재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한계적인 삶과 환경을 연장시키는 건축작업으로 인간이 자연에 공존하는, 더 나아가 생태에 내재하는 계획개념을 앞세워야함을 강조하며, 아울러 현대문명에 승선한 승객으로서 즐거운 여행을 위해 스스로를 챙기고 안전한 귀항을 위해 제어적 사고의 전환을 꾀하려 함이다.
현택수(경일대 교수·건축공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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