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보살같은 중생

얼마 전에 나는 길에서 우연히 한 노승을 보았다. 으레 노승이라 하면 그 살아온 연륜 만큼의 도가 깃들어 범상한 중생들과는 다른 기품이 있으리라 짐작하는 법이다. 그런데 스님이 보여준 행동은 그런 상식적인 기대를 저버리고 있어 너무나 사람을 당혹시켰다. 기대를 저버렸다고 해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뜻은 아니고, 스님의 모습으로 너무나 범상한 행동을 보여주었기에 오히려 감동스러운 그런 모습이었다.

IMF 이후 생활고로 거리에서 행상을 하는 인구가 부쩍 는 요즈음 버스정류소마다 아주머니 행상들이 즐비하다. 저마다 과일이며 푸성귀를 보따리째 싸들고 나와 난전을 벌이고 앉은 그네들은 몇 푼 안되는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는데, 노스님은 바로 그러한 고달픈 삶의 난전에 조용히 찾아들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난전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예의 그 노스님이 난전을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다녔다. 처음에는 과일이라도 사려고 그러시나보다 했는데 난전마다 다니며 고작 복숭아며 사과 한 알씩을 받아나가는 품이 좀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스님은 내가 서있는 곳의 난전 앞에까지 와서 복숭아 한 알을 청했는데,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구걸이요,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탁발이라는 것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점잖은 품으로 합장을 하고 청하는 탁발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신선하고 선연스러웠다.

그런데 노스님의 특별한 탁발보다 더 내 시선을 끈 것은 행상 아주머니들의 태도였다. 노변에 난전을 펴고 사는 인생이 고달프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탁발을 대하는 아주머니 중 어느 누구도 요구를 거절하는 이 없이 선뜻 자신의 작지만 귀한 재물을 한 알씩 내어 놓았다. 그 모습은 마치 보살처럼 자비롭고, 성모애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그 순간 스님이 중생이 되고, 중생이 보살이 된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스님의 특별한 탁발은 비록 작지만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도록, 중생들에게 자비의 모습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하는 듯 했다.

이는 고단한 삶 속에서 베풀어지는 참으로 아름다운 작은 사람들의 삶이 아닐 수 없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나 예수님의 사랑을 저자거리에서 발견하는 특별한 기쁨이 거기에 있었다.

소설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