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15)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감독의 걸작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더없이 처연한 영화다.

쓸쓸하고, 절절하고, 가슴 아픈 것이 '고독과 공허의 극치'를 보여주는 영화다. 빈 아파트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남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돌발적으로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공허와 권태, 고독을 한꺼번에 벗겨내려는 듯 의식은 전투적이다.

아내의 자살로 오금이 저릴 정도로 자책하던 남자. 그러나 여인은 이 사내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사내는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사내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여인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그리고 절규한다.

"나는 그 놈을 몰라. 이름이 뭔지도 몰라. 그는 미친 놈이야!"

이름을 밝히자 갑자기 의미가 생겨버린다는 라스트신이 인상적이다. 껌을 난간에 붙이고 파리의 마지막 겨울 공기를 들이마시며 죽어가는 남자의 모습도.

진지하고 철학적인 섹스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국내 수입되기에는 장장 24년이 걸렸다.

마론 브란도와 마리아 슈나이더의 솔직하고 대담한 섹스신은 72년 제작 당시에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나라에 공개되지 못했던 것은 '성애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딱지 때문이었다.

막아야 한다는 공륜의 압박감때문에 번번이 수입길이 막혔다. 그 사이 실비아 크리스텔의 '엠마누엘'을 비롯해 난잡한 에로영화가 대부분 한국을 찾고 있었다.

96년 공개될 때 수입사는 '100% 무수정 공륜 통과'를 광고 카피로 썼다. 그러나 음모가 노출되는 장면이 뿌옇게 화면 처리된후 개봉됐다. 화면을 가리는 것은 수정이 아니라는 강변이 가관이다.

달착지근함은커녕 고통과 끊임없는 자기 확인을 강요하는 섹스 장면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스모그. 한국 관객들은 호흡곤란을 겪어야 했다.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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