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비 새는 천마총

천년 고도 경주(慶州)가 위태롭다는 이야기는 벌써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이다.

시멘트로 칠갑을 하고 마구잡이 개발로 고분군이 파헤쳐지고 관광객을 맞는다는 구실로 문화재의 원형이 예사로 변질돼 마이동풍이다. 끝내는 한국고대사의 새로운 복원이라고까지 감격했던 천마총(天馬塚)에 비가 새고 있다. 마치 경주의 문화재 전체를 적시는 느낌이다. 지난 73년7월. 당시는 그저 경주고분 155호로 불렀던 이곳에서 1천500여년의 잠을 깨고 찬란한 금관이 나왔다. 푸른빛의 곡옥이 금관의 위용을 에워싸 빼어난 신라인들의 솜씨에 모두들 놀란 눈 뿐이었다. 금관을 수습하자 갑자기 맑던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덮이면서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으며 금관을 안전하게 옮기자 비가 그쳤다는 유명한 일화를 낳기도 했다. 발굴은 계속 되었고 마침내 한달 뒤. 목덜미 갈기와 꼬리를 휘날리며 구름위를 질주하는 백마를 그린 천마도가 세상에 나왔다. 역동하는 신라인의 기상과 기품을 명쾌하게 그린 사실적인 그림이다. 국보 207호. 신라회화 연구에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이 고분의 이름도 천마총인 것이다. 그것 뿐인가. 천마총은 1만5천여점의 각종 유물들이 수습됐다. 이중 국보로 3점, 보물로 6점이나 지정됐다. 내부가 공개된 후로는 해마다 외국인들을 비롯 20여만명이 찾아든다. 그렇지만 비가 새고 있다. 지난해 태풍 예니가 지나간후 웬만한 비만 내리면 물이 찬다고 한다. 아직 그 원인 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 관이 묻혔던 자리 옆에 차린 양수기가 너무 대조적이어서 민망할 지경이다. 천마총이 발굴되던 70년대 초에는 그야말로 문화재 발굴에서는 '경주시대'였다. 우리 고대사, 특히 4세기 이전을 단순히 미확인시대 또는 전설시대로 억지 규정하며 역사성을 부인해 왔던 일인 학자들이 경주의 발굴을 보고 주눅이 들만했다. 그런 천마총이 비에 젖고 있다니 말이 안된다. 더욱이 지난 95년 천마도의 부분 훼손 사실이 밝혀져 발칵 뒤집힌 일도 있지 않은가. 유네스코에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가 새지 않는 천마총이 우리에게는 백배 더 중요하다.

김채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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