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권희로씨 귀국이 주는 교훈

재일동포 무기수 권희로(權禧老)씨가 가석방돼 돌아왔다. 우리는 인생 황금기의 31년간을 영어의 생활로 보낸후 난생 처음 자유의 몸으로 꿈에 그리던 모국 땅을 밟은 그를 한 동족이전에 같은 인간으로서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환영한다. 권희로씨는 31년전 인종 차별 발언을 하면서 모욕을 주는 일본인 폭력배 2명을 살해, 무기수가 됐었다.

그러나 그의 절규를 계기로 일본 국내는 물론 한국내에서까지 재일(在日)한국인 문제를 다시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그 이래 재일 한국인의 권익이 놀랄만치 신장된 측면이 일부 있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권희로씨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일본의 강압과 무리수에 맞서 싸우는 영웅으로 보이는 측면이 없지않은 것 같다.

권씨가 귀국길에 탑승한 일본 항공기에 100여명의 내외 기자가 동승, 열띤 취재경쟁을 벌인 것만 보더라도 그는 '돌아온 영웅'인 것이다. 이것은 그의 인생이 워낙 드라마틱한 탓도 있겠지만 그의 항변을 영웅시하고 권희로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일부 보도의 탓도 없지 않다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권씨의 기구한 인생 역정도 끝나가고 있는 만큼 이처럼 열띤 분위기로 권희로씨를 몰아가는 것은 권씨 자신을 위해서도, 또 재일 한국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란 생각이다. 일본 폭력조직들은 권씨를 해코지하기 위해 이미 조직원을 부산에 보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게다가 일본 언론들도 권희로씨를 영웅시 하는 한국의 언론 보도를 이상한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고 보면 지나치게 우리가 들뜰 필요가 있는가 싶은 것이다.

더구나 재일 한국거류민단과 조총련측이 권씨의 가석방에 대해 단 한마디의 환영 성명도 내놓지 않은 채 곤혹스럽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재일동포들은 아직도 '권씨를 중죄인'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의식, 더이상 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권씨의 가석방을 반기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제 권희로씨는 71세의 노령에 건강도 썩 좋지 않다.

그리도 그리던 어머니와는 지난해 사별,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만큼 그를 이제 새삼스레 일본인의 옹졸한 섬나라 근성에 맞서 싸우는 영웅으로 미화하기보다 남은 여생이나마 편히 쉬면서 모국의 정취와 자연을 느끼게 하는게 도리가 아닐까 한다.

권희로씨는 돌아온 영웅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인들이 주장하듯 중죄인도 아닌 '역사의 희생자'라고 보고 편히 쉬게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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