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축이야기-(10)아파트와 조형성

건축은 은신처, 인간생활을 담는 용기로 흔히 비유된다. 과거에는 그릇의 양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촉각과 시각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커피를 투박한 질그릇에 담아둔다면 커피의 향기와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전통차를 유리잔에 따른다면 은은한 멋을 기대할 수 없듯이, 우리의 생활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이 용도에 걸맞지 않게 표현된다면 생활의 멋이 사라지고 만다.

또한 건축을 의복에 비유해 볼 수도 있다. 몸에 옷을 걸치는 행동은 비어있는 땅에 건물을 세우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만, 건축물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매우 둔감한 것이 사실이다.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기 위하여 자신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체형과 분위기를 자신이 잘 알고 있어야 하며, 또한 이러한 개성을 표현하고 보완해 줄 수 있는 디자인을 골라내는 안목을 갖고 있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자기 인식과 디자인의 센스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누구라도 어느 정도는 지니고 있다.

그러나, 건물의 디자인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지금처럼 건축의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를 건축 전문인에게만 맡기고 만다면, 우수한 건축물들을 지닌 선진사회와 같은 쾌적한 환경을 이루기 요원하게 될 뿐이다.

비어있는 대지에 건물을 세우면서 대지의 형태, 크기, 주변환경에 잘 조화되게 디자인하는 것은 옷을 고르는 일상적인 생활, 그릇을 골라내는 평범한 행동만큼이나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 건축미(建築美)는 건물을 다듬고, 가꾸고, 만지고, 들여다 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게 할 수도 있다.

유럽여행을 통하여 집합주거단지(apartment;이하 아파트)를 방문하면, 국내의 현실과는 매우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단지의 설계자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애착을 가지는 모습은, 생소하지만 부러운 현상이다.

대구지역의 아파트단지는 어떠한가? 그동안 수많은 주택공급업체들은 좁은 대지에 최대의 단위 주호를 배열하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 또한 주민의 인식은 건축물을 재산으로서, 투자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여 왔기 때문에 아파트단지는 비슷비슷한 외관과 배치를 가지게 되고 과다한 용적률과 건폐율로서 마치 콘크리트 숲처럼 되어, 높이에 대한 위압감, 비좁은 외부 공간, 조망을 저해하는 등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우리 스스로가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공간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데에는 과거의 이해타산적이고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하겠다.

우리 주거문화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아파트단지의 문화적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주민 전체가 건축물이 문화적 차원을 높이는데 조형예술의 한 분야로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수준높은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 건축가는 자신이 구상한 작품이 새롭고 독창적이며 미래를 바라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삶의 질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냄과 동시에 주민들의 심리적 문제까지 계획할 때 문화시민으로 가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김정재(경북대교수·건축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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