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權禧老귀국 斷想'

권희로(權禧老)노인이 그야말로 '한많은 일본땅'을 뒤로한채 부산에 안착한 7일을 전후, 언론을 통해 그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여러갈래가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 희로가 왔습니다'라는 신문제목을 보면 주인공이 권노인인지 무슨 신파극의 주연배우인지 얼얼한 느낌마저 든다. 고희를 넘긴 연치(年齒)의 노인에게 '희로가…'란 신문제목이 우리말고 다른나라에도 있을까 싶지않다. 하긴 70아니라 80나이라도 어머니앞에서야 '희로'가 될 수밖에 없겠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언론은 한바탕 독자들의 누선(淚腺)을 자극할 요량이었던가 싶다. 한술 더 떠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현장중계를 한답시고 남의나라 공항에서 오도방정을 떤 방송사도 난형난제(難兄難弟)였다. 결국 기내에서 장본인으로부터 '다른 승객에 방해된다'며 호통을 들어야 했던 우리의 기자들이었다. 곱씹어 생각해봐도 권노인의 일대기는 회한과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우리의 과거사에 다름아니다. 팔자 기박한 여인네가 뒤늦게 돌아온 딸자식을 저으기 쳐다보는 회한이 있으면 족했다. 부산 공항에 태극기와 함께 '애국동포 김희로선생 영구귀국'이란 환영현수막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는 또다른 눈망울들이 있음도 인식해야 했기에…. 우리의 주변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른바 '조선족'들, 그리고 중국의 동북3성(東北三省)에서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채 한반도의 남쪽만 응시하고 있는 또다른 200만 한민족들의 허허로운 가슴들, 중앙아시아에 산재한 우리의 '고려인'들. 이 모두를 아우르는 따스한 국민정서와 정부의 정책지원도 권노인과 차별이 없어야 한다. 재미동포처럼 재중동포(在中同胞)란 말도 국내에 정착시키지 못한채 중국인들이 민족적인 관점에서 일률로 붙여준 '조선족'이란 말을 무비판적으로 쓰는 무심한 우리에게 이번엔 중국쪽에서 또다른 권희로가 나오면 어떻게 할까. 필요한 건 차분한 자세이지 흥분이 아니다.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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