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마제토, 나를 막 때려줘요. 당신의 가련한 쩨를리나를 막 때려줘요. 양처럼 순하게 앉아 당신이 때린 매를 행복하게 맞을게요. 내 머리를 잡아뽑아도 좋고 눈알을 뽑아내도 참고 견디며, 기꺼이 당신의 사랑스런 손에 키스를 퍼붓겠어요"
도대체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린가? 등급보류판정을 받은 장선우 감독의 신작 영화 '거짓말'에 나오는 대사일까? 아니면 '노랑머리'? 행여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맘 졸이며 보는 에로 영화 대사가 아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쩨를리나가 부르는 '때려줘요 마제토'라는 아리아다.
클래식 음악과 에로티시즘. 얼핏 궁합이 맞지 않는 '불협화음'처럼 들리지만 구체적인 사건을 음악화한 오페라 작품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선정적인 것들이 많다. 하기야 미술에도 누드화가 있는데 '누드 오페라'가 없을소냐. 단지 품위있는 공연장에서 얼굴 붉히기를 꺼리는 한국 관객들에게는 '연출의 묘'가 발휘될 뿐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오페라 무대에서도 우리는 '가위질'과 '모자이크 처리'에 길들여져 있는 셈.
레온카발로의 대표적 비극 '팔리아치'만 해도 그렇다. 혼외정사를 다룬 이 오페라에는 남편이 있는 여주인공 넷다와 그의 애인 실비오가 대낮에 격렬한 정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등장하는 낯뜨거운 사랑의 이중창이 '실비오, 이런 대낮에'. 외국의 경우 과감한 노출이 일반화된 이 장면도 국내에서는 고작 실비오가 넷다의 치마를 걷어올리는 시늉을 하다가 넷다가 상의(물론 겉옷이다)를 벗는 수준에서 마무리된다.
20세기 오페라 최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쇼스타코비치의 '무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1934년 레닌그라드 초연 당시 '포르노와 심포니가 뒤섞인 오페라'라는 비난을 받았을 정도로 노골적인 작품. 혼자 잠드는 게 싫은 여주인공 에카테리나가 침실에서 옷을 벗으면서 부르는 아리아 '망아지는 암말한테 달려가고'는 단연 에로티시즘의 압권이다. '내 허리를 껴안아 주는 사람도, 가슴을 쓸어주는 사람도, 애무로 녹초를 만들어주는 사람도 없다'며 탄식하는 노래. 공산정권 아래서 당연히 '부르주아 취향의 불건전한 음악'으로 지목돼 공연이 금지됐으나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열렬히 환영받았다. 따분한 삶이 지겨워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들을 상상하는 에카테리나, 그녀의 정부 세르게이, 며느리에게 흑심을 품는 시아버지. 정부에게 눈 먼 에카테리나가 결국 남편과 시아버지를 살해하고 파멸에 이른다는 이 비극에는 노골적인 정사 장면과 성적표현이 난무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오페라 작품들에 나타난 성적인 요소들은 사실 에로틱하다기 보다는 외설적인 것에 가깝다. 배우들이 화장 아닌 분장을 하는 것처럼 오페라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사건 또한 극적으로 과장돼 표현되기 때문이다.
사실 육감적인 아리아나 노출도 불사하는 오페라보다 구체성이 결여된 기악 작품들이 오히려 더 에로티시즘에 근접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은밀한 상상력을 발휘해보라고 부추기는 것이 작곡가들에게 누를 끼치는 짓일 수도 있지만 분명, 귀밑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음악이 있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들어보자. 프랑스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의 시에 근거한 이 곡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인 목신의 이야기다. 멍하게 누운 목신은 물의 요정들이 호숫가에서 목욕을 하는 장면,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연달아 상상하며 자신도 모르게 흐리멍텅하고 관능적인 희열에 몽롱하게 빠져든다. 플루트와 클라리넷, 오보에가 이끄는 나른한 환상은 욕망으로 발전하고 곧이어 찾아오는 짧고 격렬한 클라이막스. 욕망은 급격히 수축되고 곡은 다시 차분하게 플루트로 마무리 된다.
인상주의 음악을 확립한 드뷔시의 수법은 놀랍다. 선이 분명치 않은, 몽롱하고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드뷔시는 에로티시즘이란 주제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작곡가다. 오죽하면 그를 가리켜 감춰져 있던 피아노의 성감대를 찾아내 황홀하게 애무할 줄 알았던 작곡가라고 했을까.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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