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륜거(火輪車) 구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 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100년 전인 1899년 9월 18일 경인선 노량진~제물포간 33.2㎞의 철도가 노량진역에서 한국 최초로 기적을 울리며 출발하던 모습을 그린 독립신문(1899.9.19자 3면)의 기사 내용이다.
이 당시 철도는 증기기관차 4대와 객차 6량, 화차 28량이 33.2㎞ 거리를 1시간30분(평균 시속 20~22㎞, 최고 시속 60㎞)에 걸쳐 일일 2차례 왕복했으며 당시 여객운임은 1등 객차 1원50전, 2등 객차 80전, 3등 객차 40전 등이었다.
이후 한국철도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1905년 경부선 개통을 비롯해 1906년 경의선,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 1929년 충북선, 1931년 장항선, 1936년 전라선, 1937년 수인선, 1939년 경춘선, 1942년 중앙선, 1955년 문경선과 영동선, 1963년 서울 교외선, 1966년 경부선, 1974년 수도권 전철 등을 잇따라 개통했다.
이에 따라 총 선로길이는 창설 초기의 200배에 가까운 6천580.2㎞(영업거리 3천124.7㎞)로 늘어났으며 열차 운행도 여객열차만 628회를 비롯해 수도권 전철 1천762회, 화물열차 425회로 늘어나 여객의 25.0%, 지하철 9.7%, 화물 15.8%의 수송분담률(97년말 기준)을 담당하고 있다.
열차의 속도 역시 경부선 409.8㎞를 최고 시속 140㎞의 속도(새마을호 기준)로 4시간10여분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됐다.
이같은 발전과정에서 열차에는 우리 민족의 염원 및 사회상이 깃든 이름이 붙어 해방 직후인 1946년 경부선 특급열차에 '조선해방자호', 한국전쟁 이후 1955년 경부선 특급열차에 '통일호'라는 이름이 각각 붙여졌다.
또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주도한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62년 경부선 특급'재건호', 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 집권 초기인 80년 '새마을호'가 각각 운행을 시작했다.
철도로 인한 사상사고는 60년대에는 연 평균 3천113건이 발생했으나 70년대에는 2천616건, 80년대에는 2천44건 등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90년대 들어서는 연평균 1천264건대로 떨어졌다.
그동안 여객수송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정부수립기인 1948년 연간 6천112만8천여명에서 지난해말 현재 8억2천729만3천여명으로, 화물수송량은 정부수립기 511만8천여t에서 지난해말 4천334만5천여t으로 각각 늘었다.
이에 따른 철도청 수입도 급증, 정부수립기 65억1천800여만원에서 지난해말 1조3천662억9천300여만원으로 200배 이상 늘었다.
이제 한국철도는 이같은 역량을 바탕으로 고속철도를 이용, 전국 주요도시를 3시간 이내에 연결하는 신기원을 열며 여객과 화물수송은 물론 철도를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새 천년을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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