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영남기행-(36)선비문화의 정신적 뿌리 안동

안동은 전통과 문화의 고장이다. 인물과 문화재에서 선비문화의 정신적 뿌리가 안동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안동이 어느 사이 낙후지역의 대명사처럼 알려지자 뜻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안동의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활기차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인물 반이 영남에서 나고 영남 인물의 반은 안동에서 났다는 기록이 말해주듯 퇴계(退溪)선생과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영남학파는 조선조 성리학의 구심점으로 수없이 많은 명현거유를 배출했다.

문화재가 많기로도 손꼽힌다. 안동시가 보유한 지정문화재는 총 243점으로 경주시에 이어 전국 지자체중 두번째다. 선사로부터 불교, 유교 유적 수많은 민속문화유산이 시대별로 보존, 전승된 문화재의 보고다.

지난 4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안동땅을 찾은 것도 그 진가와 유명세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일이었다. 문화적으로 가장 한국적이고 세계의 어디와도 비교되지 않은 개성을 지닌 곳이기 때문이다.

5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왕은 감응한 듯 방명록에 '전통이 숨쉬는 하회마을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고 적었다.

"사람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8월말까지 유료 입장객만 80만명을 넘었고 연말까지 100만명이 찾을 것 같다는 하회마을관리소 직원의 설명은 차라리 흥분에 가까웠다.

그러나 정작 안동사람 상당수가 "왜 이리 야단들인지 모르겠다"라는 반응이다. 안동이 전통문화의 보고이자 명소이기 때문에 여왕이 온 것이 아니라 우연히 여왕이 다녀 갔기 때문에 "안동이 떴다"고 안동 전통문화를 평가절하 하는 것이다.

"입만 떼면 우리집안이 더 지체 높고 학식있는 양반, 선비였느니 하며 문중자랑에 편 가를 줄 만 알았지 다른데는 관심이 없었잔니껴"유림출입 40년 이라는 장모(73·풍산읍)옹의 얘기가 뜨끔하다.

안동사람 스스로 안동문화에 대한 정체성과 자긍심을 갖지 못했다는 얘기다. 안동대 임재해교수(민속학)는 안동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에서 '안동땅에 누대로 살면서도 지정문화재가 가장 많은 시·군이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이라는 사실을 모르면서 과연 '안동양반'으로 자처해도 좋은 것인가…' '안동사람들은 반상과 신분문제에는 관심이 높아 족보를 새로 꾸미고 재실을 중수하며 문집을 간행하는데 열성이다… 양반 선조의 행적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우는데 몰두할 뿐 스스로 양반다운 삶을 본받아 실천함으로써 후세사람들이 기념비를 세우는데는 소홀하다'고 직언했다.

사실 조형예술과 전통극의 백미라는 하회별신굿 탈놀이가 2년전부터 하회마을에서 상설공연된 후 관광객들과 전수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폭증하고 있으나 일부 사람들은 "아랫것들이 하던 광대놀음을 너무 요란히 부풀린다"는 자기비하를 서슴지 않는다. 따라서 탈춤회원들의 후원 요청에는 대부분 고개를 훼 젓는다. 그러면서도 외지 사람들과 지역문화 얘기를 할때는 하회탈춤을 들먹인다.

정부의 무관심과 지리적인 여건 등으로 산업화의 물결을 타지 못한 탓도 있지만 웅부(雄府)안동이 60~70년대 이후 쇠락의 길로 들어 낙후지역의 대명사가 된 이유를 이같이 왜곡된 양반문화와 그로 인한 폐쇄성, 애향심 결여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안동청년유도회 김원열(40)씨는 "역설로 안동인 스스로의 내고향 문화에 대한 무지와 편견, 신분우위 개념으로의 그릇된 문중 평가 등을 타파하고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시급하고 전통문화자산을 자원화 한다면 21세기 안동은 과거 웅부의 기세를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이같은 노력들이 뜻있는 민간단체와 학자, 관에서 시작되고 있다. 우선 경북북부지역유교문화권 개발사업을 들 수 있다.

안동, 영주 등 경북북부지역 11개 자치단체에서 지난 97년부터 공동용역으로 시작한 이 사업 목적은 이 지역에 산재한 조선조 500년의 문화를 효과있게 보존하고 개발해 21세기 도의문화의 메카로 육성하고 문화산업자원 인프라를 구축 한다는 것이 골간.

이 사업은 현정부의 영남 낙후지역 지원정책과도 맞물려 최근 특단의 지원책이 강구되고 있다. 사업형태는 단순한 유적정비나 보수차원을 넘어 지역 SOC사업을 대거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경북도도 이 사업과 관련해 내년 11월 퇴계탄신 500주년 기념으로 국제유교문화제를 개최하기로 하고 유교 유물, 유적전시회와 국제적 유학발전 공로자 발굴사업 등을 펼치며 조력하고 나서 활기를 띠고 있다.

"사업의 성패는 결국 정부의 의지와 지원에 달렸습니다" 반병목안동시기획관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정부가 이사업을 국가적 문화산업 육성과 낙후지역 개발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고 했다.

안동국학원은 이의근지사와 정동호 안동시장이 전통문화유산의 체계적 조사, 보존과 종합적인 국학연구를 기치로 지난 95년 법인을 설립, 97년부터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 시설물공사를 시행하고 있으나 현재는 재원조달이 어려워 완공이 지연되고 있다.

안동대학교 교수들이 중심이 된 안동문화연구소의 활발한 지역문화 연구활동도 고무적이다. 개념 정립과 유교문화, 고미술, 독립운동사, 풍수지리 등 각 분야에 다각적인 연구와 비판으로 2세들의 교육자료를 제공하고 관의 관련정책에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임재해교수가 안동시가 추진중인 여왕방문기념 사업과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즉흥적이고 문화적 가치의 본질을 가볍게 여긴 지나친 상업주의 발상이라며 개선을 지적해 주민들과 관계자들의 커다란 반향을 부른 것이 실례다.

안동유도회가 올해 11월 완공예정으로 추진중인 정부인 장씨 추모비 건립사업도 시민들이 진정한 유가의 덕목을 계승해 지역과 국가발전에 기여하자는 지역전통문화운동의 일환이다.

교사, 문인, 대학생, 초·중·교교생 주부 등 그야말로 보통사람들 80여명이 지난 6월 결성한 '문화지킴이'라는 단체의 활동도 의미 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 정례모임을 갖고 지역문화재에 이해를 돕기 위한 교육사업, 문화재 주변관리, 문화관광가이드, 경관지 보호사업 등을 펼친다.

계층과 연령별로 '시민지킴이''청소년지킴이''어린이지킴이'로 팀을 만들어 분야별로 역량껏 활동한다. 조재경(32)실무간사는 "문화지킴이들의 주된 활동은 지역문화를 올바르게 알고 보존하며 시민운동으로 확산하는데 있다"고 했다

새천년은 문화산업이 선도하는 시대라고 했다. 안동사람들은 자기고장 전통문화에 대한 뒤늦은 개안(開眼)을 했고 무엇을 버리고 취할 것인가, 또 어떻게 꽃 피울것인지를 고민하고 움직이고 있다. 지긋지긋한 낙후와 정체를 털고 밀레니엄 시대에 문화로 거듭나는 안동을 만들기 위해서다.

글·鄭敬久기자 , 사진·李埰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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