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학 성리학(性理學)을 국가 지배이념으로 삼은 조선왕조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숭상하는 전 왕조의 폐풍이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재물을 낭비한다며 종묘 사직 명산대천제사 등 나라제사를 제외한 불교 도교 민간신앙 무속에서 지내는 제사를 탄압했다.
그러나 조상의 제사는 특별히 중요시 여겨 상복을 입는 방식과 기간을 정하는 등 예전(禮典)과 가례(家禮)를 마련하고 이를 어길 경우 불효죄로 다스렸다.
그런데 조선왕조는 국가가 공인하지 않는 신에 대한 제사는 음란하고 복될 것이 없어 금해야 한다고 규정했으므로 금지한 제사와 국가가 공인한 제사가 어떻게 다른지 백성들이 납득할 수 있게끔 설명해야 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를 성리학의 핵심개념인 이(理)·기(氣)의 논리로 해명하고자 했다.
남효온(南孝溫)은 사람이 살았을 땐 이·기가 합쳐져있어 마음과 형체가 있지만 사람이 죽으면 이 두가지가 분리돼 흙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죽은 후 동물 등 다른 실체로 환생한다는 불교의 윤회설이나, 어떤 형태로 변해 길흉화복을 점칠 수 있다는 민간무속의 주장은 사람을 속이는 수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유교서 공인한 산천제사나 조상제사가 의문없이 수긍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사람이 죽으면 이와 기가 나누어져 마음이나 형체가 없어진다고 했으므로 죽은 조상이 후손이 제사지내는 것을 어떻게 알아 감응하고 흠향하는가를 설명해야 했다. 그래서 남효온은 제사를 지내면 처음에는 이(理)만이 있을 뿐이어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으나, 제사지내는 사람이 정성을 다해 술을 따르고 구하면 희미한 무엇이 나타나 흠향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기(氣)라고 했다.
무속이나 불교의 귀신을 논할땐 이와 기가 나뉘어져 마음이나 형체를 갖출 수 없다고 했다가 유교의 귀신은 그럴수 있다고 하는 앞뒤가 안맞는 논리여서 파탄을 감출 수 없었다.
율곡 이이(李珥)가 나섰다. 이이는 사람이 죽으면 기(氣)는 흩어지지만 이(理)는 영원히 남게 되는데 남은 이가 제사를 지내면 감응한다고 했다. 사람이 죽은지 오래되지 않으면 귀신에 기가 남아 제사지내는 자손과 기로서 감응하지만 오래되면 기는 없어지고 이로써 감통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것은 자손과 조상의 정신은 본래 통하는 특별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일원론(氣一元論)자였던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남효온 이이와는 달리 귀신이란 바르고 진실된 음·양 이기(二氣)의 움직임을 일컬을 따름이라고 말해 무속은 물론 조상제사에서도 지각과 행동의 주체가 되어 감응하는 귀신은 없다고 부정했다.
그는 기(氣)의 흐름이 순리대로 굽히고(鬼) 펴져(神) 백성이 잘 살게 되는데 감사하느라고 사람이 제사지내는 것이라며 제사의 의미를 색다르게 설명하고, 세상의 임금이 나라를 잘못 다스려 원한을 품고 억울하게 죽는 백성이 생기면 원귀(寃鬼)나 여귀가 돼 흘러다닌다고 했다. 남효온과 이이도 원통하게 죽거나 횡사요절한 귀신은 정당하게 일생을 마치지 못해 기가 펴지지 못하고 맺혀 전쟁터나 원한이 맺힌 집에서 시끄럽게 울거나 처량하게 운다고 원귀나 여귀를 인정했지만 김시습처럼 원귀문제를 사회적으로 확대시켜 보지는 못했다.
제사의 기능 중 가족 친척끼리의 만남만이 중시될 뿐 조상숭배는 거의 형식화 돼버린 오늘에 와서 귀신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따지는 일은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르나 김시습의 원귀나 여귀론은 한번쯤 되새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정치지도자들의 탐욕과 위선으로 인해 고통받는 국민이 현재에도 많고, 만약 여귀나 원귀가 있어 국민을 업수이 여기는 오공(5共) 육공(6共) 잡공(雜共)들을 겁주고 훈계를 해 개과천선하게 한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맑고 밝게 소통되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조상귀신들이시여 올 추석에는 후손들이 올리는 제향에 감통 대통하시고 국민들은 가슴 아프게 하는 이들을 혼내주고 몰아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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