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급류타던 합당론 급제동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가 22일 국민회의 자민련의 합당추진에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은 '합당은 곧 공멸'이라는 위기의식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권 의원들만 모아 오찬을 함께 한 것도 이같은 위기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박총재는 당초 20일 이들 의원들과 만찬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마침 이날 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자민련 의원들의 만찬이 통보되는 바람에 행사를 순연시켰다. 박총재가 이날 모임에 신경을 쏟은 것만 봐도 정치적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박총재는 이날 민생현장 방문 마지막 행사인 교통방송 방문 후 곧바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다. 함께 했던 박철언부총재는 자신의 승용차를 놔둔 채 박구일의원 차로 삼청동 오찬장으로 떠났다. 나머지 의원들도 각자 비밀리에 행사장에 모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현역 의원들은 대구.경북의 8명 중 박준규 국회의장, 김복동 전수석부총재를 제외하고 6명이 모두 모였다. 또 부산.경남의 김동주.차수명.강종희의원도 함께 했다.

비공개리에 진행된 이날 오찬에서 참석 의원들은 합당과 정치개혁 방안 등에 대한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참석 의원들은 합당에 대해 극력 반대입장을 피력했다. 그 동안 대통합을 주장하면서 합당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던 박부총재도 "단순 합당은 반대한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이날 합당반대 목소리는 박총재가 "지금은 합당을 논의할 때가 아니라 정치개혁을 논의할 때"라면서 반대입장에 동조함으로써 탄력을 받았다고 참석했던 최재욱전환경부장관이 밝혔다. 즉 그 동안 영남권 의원들은 물밑에서 합당반대 목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여권 핵심에서 추진중인 합당론을 정면에서 거역하지는 못해 왔다. 그런데 박총재가 그들에게 힘을 보태준 것이다. 이 자리에서 영남신당 등 독자적인 세력화 논의가 나오게 된 것도 이같은 배경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또 정치개혁 방안과 관련해 중선거구제 채택과 정당명부제 도입반대 입장도 정리했다. 이는 참석 의원들의 현실적인 이해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영남권 의원들이 입장정리를 마침에 따라 연휴 뒤인 28일 열릴 자민련 의원총회에서는 합당반대와 중선거구제 도입문제가 최대의 화두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박총재가 의총에서 합당반대 입장을 구체화할 가능성이 높아 여권 핵심의 합당의도는 강한 제동을 받게 됐다. 게다가 여기에 충청권 의원들까지 가세할 경우 합당론이 백지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박총재의 합당반대에 대해 일각에서는 곱지않은 시선을 던지고 있다. 박총재가 DJ와 JP간에 벌어지고 있는 합당논의에 소외되면서 탈출구를 모색하면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어찌됐든 박총재의 합당반대 목소리는 그동안 공동정권의 성공적인 운영에 주력했던 박총재가 태도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박총재가 향후 어떤 결론을 내릴지 관심사가 되고 있다.

李相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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