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퍼지식 정치

◈애매성의 퍼지

1%의 확실성과 99%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언제까지 1%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99%의 불확실성에 도전한 것이 바로 퍼지(애매)이론이고 카오스(혼돈)이론이다. 퍼지이론을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는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봐도 그렇다.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을 하면 참말이 되고 참말을 하면 거짓말이 된다"는 역설이다. 참과 거짓의 구분이 애매 모호하다는 뜻이다. 참과 거짓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반참과 반거짓의 존재를 인정하자는 논리다. 물론 이러한 퍼지이론의 등장은 1920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로 비선형(非線形)의 다원화논리가 시작된 데서 비롯 된다. 퍼지식 사고라는 책을 낸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바트 코스트 교수는 그러나 "불확실하다고 해서 무조건 비과학의 영역으로 볼 것이 아니라 퍼지식 사고를 통해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일종의 현실적응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바트 코스트교수가 예언한 대로 우리나라에 이러한 퍼지식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헷갈리는 정책들

DJnomics는 신자유주의냐 아니면 유럽식의 제3의 길이냐에 대해서는 아직은 정답이 없다. 시장경제원리와 효율성을 중시한다든지 또 정책수행은 군사정부식 목표지향보다는 신자유주의자 하이에크식의 원칙지향인 걸로 보면 이는 다분히 신자유주의 쪽이다. 그러나 최근 과감한 재벌개혁정책이나 분배우선주의적인 각종 정책 그리고 생산적 복지를 보면 이는 다분히 신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모은 제3의 길 쪽이다. 생산적 복지는 제3의 길의 핵심인 일하는 복지(welfare to work)와 거의 같은데도 굳이 제3의 길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신중도(新中道)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나 이를 확실히 해주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애매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퍼지식인 것 같다.

얼마전 일본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는 일본 격주간지 사피오에다 DJ경제를 평가하면서 "DJ는 미국이 시키는대로 한국경제를 미국화 한 것외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실패한 지도자"라고 과격한 비판을 했다. 이를 본 미국의 MIT대학 교수 돈부시교수는 "오마에의 무지를 한국민은 용서해 주기 바란다"고 동급의 비판을 가했다. 두사람의 글에 대한 국내평가를 종합해 보면 양쪽글은 자기나라 입장에서 썼고 또 모두 일리있는 면과 일리 없는 면을 다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정답은 무엇인가. 확실한 것은 우리는 외환위기는 일단 넘겼다는 점이다. 김대통령의 표현처럼 절반의 성공을 한 셈이다. 그러나 이를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에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IMF의 관리를 받아 외환위기를 넘겼다. 그런데 우리를 관리한 IMF는 98년 하반기 연례보고서를 통해 한국에 대한 IMF의 처방은 실패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영향을 가한 쪽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는데 영향을 받은 우리는 성공적이었다고 자찬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엄청난 경제기반붕괴 그리고 눈물의 실업대란 등 위기는 넘겼지만 그에 따른 희생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성공의 질' 이 문제다. 퍼지식 접근때문인지 이부분에 대한 진정한 토론도 없다. 정말 헷갈린다.

선단식 경영을 종식시키면 누가봐도 재벌해체인데 왜 굳이 재별개혁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아직은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은 북한인데 북한군함이 넘어오면 침범이 아니고 월선이고, 간첩선이 넘어오면 침투가 아니고 표류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말이 맞는 말인지 퍼지식 접근은 너무 애매하다.

◈무책임은 아닌지

여기에다 공존의 논리까지 곁들이고 있어 국민은 더욱 헷갈린다. 옛날에는 '이것이냐 저것이냐(OR)'는 선택의 논리여서 간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대 그리고 나(AND)'라는 공존의 논리다.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고 보수 그리고 진보이다. 젊은피와 늙은피, 가진자와 못가진자 등에서 옛날과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2분법인 OR논리가 아니고 모두를 아우르는 AND논리다. 그런데 문제는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신(新)관치경제에서 나오는 자율이 갖는 진정한 뜻은 선진경제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책임을 면하기 위한 것이라고 경제계는 믿고 있다. 마찬가지 논리로 퍼지식 정책도 다원화 시대에 맞추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책임을 면하기 위한 것이라면 큰일이다. 'AND정치' 역시 화합보다는 표(票)만을 위한 것이라면 이 역시 비극이다. 그리고 열역학 제2법칙을 응용한 체계이론(system theory)이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르듯이 퍼지이론도 이른 것이 아닐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