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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기획팀 밀착취재-팔공산 훼손 왜 이지경까지

"기차도 올라가고 배도 올라가고"

자연파괴의 극치를 보려면 팔공산으로 가보라는 말이 실감나는 현장이었다.

"솔직히 더 이상 망칠 것도 없잖아요. 차라리 규제나 풀어 세수를 올리면 낫죠"취재팀이 팔공산 현장을 다니면서 '귀가 아프도록' 들은 얘기를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물론 칠곡군 등 지방자치단체와 지주들의 목소리다.

팔공산 북서편, 정확히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에서 군위군 부계면 남산동까지 '계획 없는 신도시'가 형성돼 산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4, 5년전.

전국에서 가장 큰 희생양

94년 문민정부가 '불필요한 규제를 없앤다'며 실시한 준농림 건축 규제 완화가 출발점이 됐다. 하지만 대책 없이 시행된 이 법안은 결국 3년만에 러브호텔 양산이라는 부작용만 낳은 채 폐지됐다. 그동안 팔공산은 전국에서 가장 큰 희생양이 됐다.

4년이란 짧은 기간이지만 칠곡, 군위, 경산 등의 산자락에 생겨난 러브호텔수만 40여개. 또 300여개에 이르는 식당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파괴의 역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IMF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산전체에 난리가 났을 겁니다"

주민 우영식(43)씨는 "한 2년 지나면 산 형태가 바뀔 것"이라며 말을 던졌다.

올들어 경기가 회복되면서 이러한 '난리의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어디를 가나 산허리가 통째로 날아가고 숲을 대신한 시뻘건 흙바닥을 쉽사리 볼 수 있다.전원주택 허가 한달 30件

최근 칠곡군이 팔공산 일대 지역에서만 내주고 있는 전원주택 허가가 한달 평균 30여건. 사전 문의나 토지 거래도 큰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 간다면 팔공산을 끼고 있는 남원리나 기성리 지역 대부분이 전원주택으로 채워질 날도 머지 않았다. 경기 침체로 한동안 신축이 뜸했던 식당들도 전원 카페라는 이름으로 팔공산 자락에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여기엔 '개발'의 정당성을 외치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역할이 큰 몫을 한다. 군위군에 이어 칠곡군은 이달말 세수 증대와 지주간 형평성을 들어 팔공산 일대의 건축 규제를 대폭 풀 계획이다.

또 이미 들어선 업소만으로도 부족해 칠곡군은 한티재 아래에 5만여평의 위락 단지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전원 주택 또한 겉으론 '어쩔수 없는 허가'라지만 외지인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인상을 지울수 없다.

대책 없는한 파괴 가속화

대구에서 지리적으로 떨어진 탓에 그런대로 '파괴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군위군도 업소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 칠곡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마치 불난집에 기름을 쏟아붓고 있는 듯하다.

'팔공산의 불행'은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82년 도립공원 지정 당시부터 시작한다. 가옥이 산재한다는 불명확한 이유로 정부가 가산과 동봉을 잇는 주능선인 한티재 아래 대부분을 공원구역에서 제외한 탓이다.

경북도도 방관으로 일관, 팔공산 훼손에 한몫을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구시는 개발붐이 일던 지난 95년 팔공산 일대를 녹지지역으로 묶고 고도제한 지역으로 설정 3층 이상 건물의 신축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또 앞산에서만 40여개소의 골프연습장 허가를 반려해 '녹지 보존'에 대해 경북도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원구역으로 지정된 팔공산의 면적은 3천700만평. 이곳에는 1천79종에 달하는 나무와 풀이 자라고 있다. 굳이 설명을 달지 않더라도 지역민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자연의 보고'이자 '허파'다.

최근 파계사 넘어 칠곡쪽으로 가본 지역민이라면 누구나 파괴의 현장을 보고 억장이 무너지며 '한숨'을 내쉬게 된다. 하지만 대책이 없는 한 한숨은 체념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기획취재팀.朴炳宣 李宰協 金辰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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