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축이야기-13)환경 친화적 건축

이문열의 소설 '시인'은 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진 김병연의 일대기이다. 소설 말미에 아들 익균이 방랑생활하는 아버지를 고향 집으로 동행해 가는 도중에 고갯길 노송 그늘에서, 개울가 청석 끝에서, 바위산 기슭 풀섶에서, 아버지를 문득 문득 잃어버려 화들짝 놀라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아버지 김삿갓이 없어졌다 싶었으나 눈여겨 보면 그냥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주위 경관과 너무도 조화를 이루어 아들이 얼른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대로 소나무고 그대로 바위이며 그대로 구름인 것이다. 자연 속에 김삿갓이 있어서 더욱 자연스러워 지는 경지이다. 진정한 친화의 개념을 알려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미래학자들은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지구 생태계의 파괴로 인식하고 21세기를 기계, 전기, 전자시대를 이은 생태학(ecology)의 시대로 전망하고 있다. 생태학은 '오이코스(OIKOS)'에서 연유하는데, 오이코스란 거처 및 살림살이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생태학은 본질적으로 생물들의 삶터와 살이(생애)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생물과 주변환경과의 상호관계가 주 연구대상이 된다. '생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우리에게 커다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인간의 편익향상과 경제논리 추구의 기존 개발개념은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개념으로 전환되고, 환경친화적 건축개발과 생태도시 조성은 범세계적 과제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현대철학에서도 탈 근대(postmodernism)에 이르러서는 인간 이성의 자연지배적 공격성을 차단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며, 과학기술적 유산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근대 이후 황폐화된 존재의 질서를 회복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리오타르(F.J.Lyotard)는 인간과 자연, 기술과 생명, 그리고 논리와 존재 사이의 친화적 유대관계를 회복하려는 환경철학의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한스 요나스(Hans Jonas)는 생태학적 위기상황을 인간 존재의 문제로 부각시켜 윤리의 영역을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확장할 것을 주창하였다. 더 나아가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은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자유영역을 보증해 주는 변증법적 생태관계성을 지향하게 되었다.

세기말에 화두로 던져진 환경문제는 주어진(given) 것에 어떻게 적응하느냐 (how to adapt)로 귀결되고 있다. 주어진 환경이란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경우보다는 자연환경을 일컫게 되고, 적응이란 상대를 해치지 않고 내가 맞추어 가는 것이다. 인간의 욕구를 자연환경에 대하여 어떻게 조절해 가느냐가 관건이다. 그것도 상호간 반려의 차원에서, 친숙한 동화(同化)의 수준으로.

환경친화적 건축이나 생태적 설계개념은 이같은 인식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풍토에 알맞은 공간, 지역성에 어울리는 형태구성, 기후에 적합한 재료 등 고유한 자연조건을 최선으로 적용하며, 자연환경의 순환체계에 능률적으로 내재하는 건축을 추구하는 것이다. 건축물과 주변 환경이 서로 순리적으로 영향을 미쳐 공존적 유기체로 통합되는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합리성과 종합성이 그 당위성을 대변하는 현대 도시계획은 포스트모던이란 비판적 대안에 직면하였다. 포스트모던 도시계획은 전문가에 의해 획일화된 현대도시를 부정하고 도시공간의 다양성을 추구하며, 보다 유기적인 공간구성을 가지는 전통 도시사회를 그 전형으로 추구하기도 한다. 도시와 건축을 순환성, 다양성, 자립성과 안정성을 가지는 생태적 유기체로 구성하려는 대안들은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 위에서 생명의 싹은 움트지 못한다. 생태적 죽음에 직면한 우리의 도시와 건축을 살려내야 하겠다.

쾌적한 환경, 편리한 생활, 경제적 효율성을 공학기술과 건축설비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적응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 때이다. 한량없는 인간의 욕구를 과학기술로 부채질할 것이 아니라 순리와 섭리의 체계로 보듬어 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건강하지 못한 향락보다는 건강한 고통의 감내이다. 진정한 즐거움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에어컨의 차가움으로 여름을 사냥함은 좋지만 자연풍에 이마의 땀을 식히는 유유함을 알고, 보일러 열기로 추위를 잊음도 편하지만 콧등 싸한 윗목 공기의 상쾌함을 느끼는 즐거움도 알아야 하겠다.

현대의 인류가 온전히 자연인일 수는 없겠다. 온실화된 인공환경에서의 나약성을 건강한 자연환경에 더불어 친화적으로 극복함이 현대건축의 사명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루소의 외침을 오늘에 번안해 본다. '자연에 함께 하자'고. 김삿갓의 풍류를 되새기며.

이무진(경일대 교수·건축공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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