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베품의 행복

무더위로 짜증스럽던 여름이 어느새 지나갔는지, 밤새워 귀뚜라미가 울고 서늘한 바람이 뺨에 스치는 걸 느끼게 되니 가을이 왔나 보다.

호젓한 산책길가에 늘어선 억새꽃이 바람에 날릴 때나, 벼를 베고 난 휑한 들판, 그리고 빨갛게 혹은 노랗게 물든 나뭇잎새를 볼 때 마음이 숙연해진다. 더구나 IMF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서민들에게 들리는 것 이라곤 우울한 소식 뿐이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되고, 사업의 실패나 실직을 비관하여 아까운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어났다. 문어발처럼 무리하게 떠벌리던 대재벌도 알고보니 속빈 강정이었으며, 우리가 믿고 푼돈을 맡겼던 은행도 믿을 게 못되었다.

시중은행의 금리가 낮아지고부터, 시민들의 투자대상이었던 파이낸스사들이 활기를 띠고 우후죽순 처럼 생기더니 아니나 다를까 줄줄이 도산 도미노 상황에 빠졌다. 연 2할에서 3할의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데 현혹되어 평생을 모은 퇴직금마저 날리고 가슴치며 우는 서민들의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고, 악덕사주들은 몇백억원을 횡령하고 잠적해버렸다.

또한 각종 유사파이낸스, 금융다단계 조직 등 투자금융이 봇물처럼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터져나오고 있다. 20일만 투자하면 원금의 18%를 배당금으로 준다는 말에 속아 5천여명이 투자한 돈 255억원을 챙겨먹고 도망친 사기꾼도 있다.

돈을 떼먹은 놈이 배짱을 부리다가 거금을 가지고 줄행랑쳐버린 현장에는 시민들이 발버둥치며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사설금융으로부터 서민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왜 미리 쓰지 않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람의 여러 가지 욕심중에 물욕만큼 집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숨떨어질 때까지 갖가지 욕심에 얽매여 살아간다.

고요한 마음속에 욕심이 일어나면 그 욕심에 이끌리어 물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끝내고 패가망신하고 만다.

물욕 때문에 자기가 한평생 쌓아올린 '생의 금자탑'을 일시에 와르르 무너뜨린 저명한 정치가, 고위관직자, 금융인, 대재벌, 심지어 교수, 학자들의 말로를 우리들은 수없이 보아왔다.

악덕 파이낸스, 투자금융의 사주들은 물론이지만, 거기에 현혹된 투자자들도 따지고 보면 모두 다 물욕 때문이다.

사기꾼들은 항상 사람들의 물욕을 이용하여 큰 수입을 올리게 하여 준다느니 높은 이자를 준다느니 하여, 미끼를 던져, 투자자들이 점점 빨려들어 투자를 더 많이 할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깡그리 챙겨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일확천금의 배금주의가 우리 경제를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제도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의 정신개조가 선행되어야 한다. 성실하고 순리대로 살며, 베품의 행복을 아는 국민이 되어야겠다. 그러나 세상은 다 그런 것만도 아니다.

며칠 전 신문에 아름다운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10년 동안 자비로 10만권의 도서를 각급 학교와 군부대에 기증한 한국 청소년도서재단 이성원 이사장의 미담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제조업과 건설회사를 경영하여 모은 전 재산을 정리하여 그 기금의 수익금으로 책을 보내고 있는데, 그 분의 말은 물욕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준다.

'재산은 먹고 자는 정도만 있으면 된다. 욕심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더 없이 행복하다'

그렇다. 참깨 줄기의 참깨를 털 듯이, 볏단에 벼를 털어 버리듯이, 모든 욕심을 훌훌 털어버리고 남을 위해 베풀 때 우리 인간은 더 없이 행복을 맛볼 것이다.

모든 것을 거두어 들이고 갈무리하는 이 가을에, 소조히 불어오는 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인생의 참다운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