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풍곡선생 살아 계셨다면 이번 수해 없었을 텐데

"풍곡선생만 살아 계셨다면 전쟁터를 방불케 할 이런 수해는 없었을 것을…"

지난달 24일 한밤중에 내습한 태풍'바트'가 무참히 휩쓸고 간 성주군 용암면 동락리 120여만평의 광활한 후포들녘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국도변에 비석하나가 우뚝 서 있다.

바로 낙동강을 끼고 있어 예전부터 수해가 밥먹듯 발생하던 이곳 후포들녘에 맨처음 제방을 축조한 풍곡(楓谷) 고 석태영(石泰暎)선생의 공적비다.

태산같은 물마루에 갈기갈기 찢겨 널부러진 비닐, 엿가락 처럼 휘어진 비닐하우스 철근, 진흙탕 속에 처박혀 나딩구는 참외… 선생의 공적비는 이 참혹한 수해현장을 그저 안타까운 듯 내려보고만 있을 뿐이다.

풍곡선생은 지난 1906년 이곳 성주군 용암면 사곡리에서 천석꾼의 집안에서 태어나 대구 계성학교(현 계성중)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 유학길에 올랐다가 일제의 학교에 다니느니 차라리 고향의 무지한 농민들을 일깨우겠다"며 학업을 포기하고 귀향했다.

6.25동란의 혼란기인 1952년 이웃주민들과 함께 해마다 큰 물이 지면 한해농사를 망치는 마을앞 후포들녘에 제방을 축조키로 하고 수리조합을 결성했다.

동분서주. 공사착공 5년만에 당시예산 4억8천만원, 연인원 15만명이 동원된 기념비적인 후포제방을 완공해 무려 120만평에 이르는 문전옥토를 농민들에게 되돌려 주는 쾌거를 이뤄냈다.

지난 76년 4월1일 이같은 풍곡선생의 뜻을 기려 마을주민들이 건립한 공적비.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수장당한 농민들에게 아픔을 툴툴 털고 또다시 일어서라고 힘을 북돋워주고 있다.

성주.金成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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