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시간적 상한선은 없다' 칠순의 고령에도 나란히 작품집을 낸 향토 원로시인 박주일·정재익씨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다섯번째 시집 '는개 그리고 달빛'(만인사 펴냄)을 낸 박주일씨와 올해 고희를 맞아 네번째 시조집 '팔공산 가는 구름'(그루 펴냄)을 엮어낸 정재익씨. 수십년의 세월에도 무디어지지 않는 창작열은 물론 후진양성이나 대구문단의 살림살이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20년 가까이 '대구문학아카데미'를 운영해오며 신진들을 키워내고 있는 박씨와 대구문협 지회장으로 대구문단의 이런 저런 일들을 관장하고 있는 정씨는 평생 문학을 놓지 않고 살아온 이들이다.
박씨는 이번 시집에서 관조의 시선으로 인생과 문학을 찬찬히 되짚어 보고 있다. '나무와 풀이 결국은/ 한길로 간다/ 나무의 배경은 하늘이지만/ 풀의 배경은 나무 그늘이다/ 지금 그 그늘에 하늘과 구름이 내려 와 있다/ 바람이 그 위를 밟고/ 느린 걸음으로 지나간다/ 지나가면서 백발이/ 갈잎에서 파도치게 한다'('동행')고 노래했다. 또 '…사람들은 부질없이/늙어 가고/ 죽음의 길로 흘러가는 것이다/ 작은 흐름은 더 큰 흐름에 묻혀/ 쉴새없이 달리고 있다'('흘러가는 것에 대하여')며 늙음에 대한 쓸쓸한 감정도 토로한다.
하지만 시인의 눈에 비친 '나이듦'은 결코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잎이 길을 열어 놓습니다/ 잎들이 꽃을 조용히 이끌어내면서/ 연신 새 길을 만들어냅니다'('봄을 뚫고 나온 어린 잎')에서 보듯 새로움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주는 삶의 연륜을 긍정하기도 한다. 이번 시집을 내면서 "낱말 궁합 맞추기에 힘을 써보았다"는 시인은 "궁합이 맞았다면 오래 빛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쉬 시들어질 것"이라고 시의 생명력을 정의해보기도 한다.
한편 정재익씨의 시조집은 94년 '아침 산행'이후 5년만에 발표한 작품집이다. 이번 시집을 내면서 "쓰면 쓸 수록 점점 더 어렵고 자신이 없는 이 작업을 왜 계속하게 되는 것일까"라며 창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되묻고 있다.
나이들면 더욱 그리워지는 고향에 대해 시인은 '늦가을 잎이 지면/ 고향 집엘 가고 싶다/ 가뭇한 기억들이/ 섬돌 아래 서성이고/…/둘러앉은 산과 들도/ 몰라보게 야위었으리/…/ 이제는/ 다 흘러간 강물/ 가슴 이리 출렁이네'('고향 집')라고 노래한다. 시인의 관심이 이런 서정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가면극' '두더지' '몸살' '금강호' 등의 작품은 IMF사태와 남북문제 등 시사적인 제재(題材)를 다듬어 우리가 지향해야할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짓는 성벽(性癖)보다 고치는 성벽'이 더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퇴고를 거듭하는 시인으로 평가받는 정씨는 세상살이와 사람살이에 대한 성찰의 마음가짐을 작품속에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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