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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월간잡지에 실리고 있는 '김유신(金庾信)과 그의 시대'라는 연재물을 관심있게 읽고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김유신에 대한 평가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학계와 일반의 시각 교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당(唐)나라를 불러들여 동족 고구려, 백제를 멸한 것은 도둑을 끌어들여 형제를 죽인 것과 다름이 없다"고 신라의 삼국통일을 규정한 단재 신채호는 김유신을 "지용(智勇)이 있는 명장이 아니요, 음흉하고 독살스러운 정치가" 라고 혹독하게 비판하였다. 단재의 주장은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고, '신라의 삼국 통일로 인해 우리 민족사의 무대가 크게 좁아졌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때 김유신을 민족사 최고의 인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나서는 데는 용기가 필요한데 필자는 과감하게 자신의 논지를 펴고 있다.

그는 '삼국시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단합하여 외래 침략자와 맞섰더라면' 같은 가정은 삼국이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였던 전국시대(戰國時代) 같은 상황을 외면한 것으로 본다. 또 '고구려가 통일했더라면'같은 발상도 가상 시나리오에 지나지 못하는데, 그것은 당시 고구려는 동아시아의 슈퍼 파워로 등장한 당과의 관계설정에 실패했고, 내부 분열로 자멸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 신라는 삼국 중 내부의 역동적 힘이 가장 강하였고 이를 결집하고 '외세를 활용'하여 삼국통일의 길에 나선 주역이 김유신이었다는 것이 그 필자의 주장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외세 의존이다'라는 논란이 있을 수 있고 오늘날의 민족국가 개념으로 볼 때는 부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깊이있게 분석, 파악한 위에서 내려지는 것이지 오늘의 입장에서 펼치는 이상론이어서는 안된다. 그는 "고구려, 백제, 신라사람들이 서로 친연성(親緣性)은 느꼈겠지만 동족의식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면서 "신라는 민족의 재통일이 아니라 민족사 최초의 통일을 달성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외세를 끌어들여 민족을 위축시킨 것으로 무조건 몰아갈 수 없다고 본다. 민족형성과 관련된 매우 논쟁적인 발언이다.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멸하고 난 후 삼국 전체를 말살시키려는 당과 8년 전쟁을 벌여 그들을 쫓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하나의 통일국가로 만든 것이 민족사적 죄악일 수 있는가? 김유신은 그 수괴인가? 김유신과 그의 시대를 폄하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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