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 만연하는 각종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최근의 사회개혁을 지켜보는 많은 시민들은 무공해 조직인 시민단체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새천년을 앞두고 많은 분야에서 개혁이 진행되고 있지만 개혁의 중요한 축을 담당할 시민단체 개혁에 대한 논의는 듣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120여만개의 시민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NGO의 천국' 미국에서는 오래전 시민단체들의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해 '보다 나은 운영을 위한 자선사업자문단(CBBB)' 같이 시민단체를 감시하는 시민단체까지 등장했다. 국내 시민단체들이 21세기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현 사회체계에 기반을 둔 시민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수적이다.
국내 시민단체는 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수백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양적 성장은 이룩했으나 내실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해 낮은 재정자립도, 시민없는 시민운동, 전문성 결여, 조직의 관료화, 시민단체간 연대부족 등 시민운동의 발목을 잡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의 가장 큰 걸림돌은 낮은 재정자립도를 들 수 있다. 외국과 달리 기부금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국내 시민단체는 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전적으로 회원들의 회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아직 정착되지 못해, 회비를 제대로 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회원이 거의 없는 시민단체들이 지역에 상당수 있으며 가장 규모가 크다는 대구경실련, 대구참여연대도 회원이 350명 정도로 재정자립도가 60~70%에 머무르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을 주도하는 간사들은 저임금 또는 소액의 활동비만 받고 사명감 하나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갈수록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재교육등 자기능력 계발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시민들의 참여가 적고 회원들마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개진을 할 수 있는 내부 구조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교수, 변호사등 일부 전문직종사자들이 중심이 돼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시민없는 시민운동으로 이어지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이에대해 일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전문지식을 갖춘 명망가들이 시민들과 회원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선각자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시민들의 참여와 회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 대중들의 욕구를 해소해 주는데 시민운동의 생명력이 있음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없다.
시민단체들이 심도 있는 전문영역을 구축, 장기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인기에 집착해 쟁점 위주의 단발성 문제에 매달리는 백화점식 시민운동을 지향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외 올해 초 칼럼대필사건을 계기로 경실련 내부 활동가들이 사무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조직 내부 민주주의등 시민단체가 갈수록 대형화되면서 발생하는 관료화문제, 지향하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시민단체간 연대가 잘 되지 않은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와관련 시민단체의 경제적 독립을 돕기 위해 정부가 시민운동의 정체성을 해칠 수 있는 직접 지원 대신 기부금 모집 금지법 개정과 세제상의 혜택등을 주는 간접 지원의 필요성이 시민운동가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3월 비영리시민단체에 법인자격을 부여해 활동을 지원하는 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이 중의원을 통과했으며 미국은 특정 정파를 지지하지 않은 시민단체의 기부금에 대해 세제혜택을 부여하는등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이와함께 시민들도 회비를 내는 회원이 돼야 하고 시민단체는 시민참여를 높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재정상태를 포함한 모든 정보를 회원과 사회에 공개해서 도덕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또 모든 분야에 간여하기보다는 소단위 중심의 지역밀착형 전문화로의 운동방향을 전환하고 의사결정과정의 투명성으로 조직 내부 민주주의 확보, 성명서를 같이 발표하는 단순 연대차원을 떠나 공동사업을 구상, 추진하는 적극적인 연대등의 노력을 기울어야 시민단체가 21세기 시민사회를 이끄는 주역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대구참여연대 박덕환(35) 사무처장은 "시민단체가 간부중심에서 회원중심으로, 이론 중심에서 실천중심의 정체성을 확립할 때 시민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고 21세기 희망을 여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대안세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李庚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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