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가 기승을 부린 시점은 언제나 역사적 혼란기와 관계가 많았다. 제정 러시아 말기, 유럽의 19세기 말, 우리 역사에서 고려말, 신라 말 등은 그 좋은 예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면 사람들은 불안감을 가지게 되고 그 불안감을 해소 내지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비주의에 경도되기가 쉽다. 오늘날 유럽에서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는 청년들의 네오파시즘적 테러는 사회주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서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불안을 반영하는 전체주의 현상이다. 전체주의는 지도자의 탁월한 능력, 타집단에 대한 공격의 위기, 집단성을 강화하기 위한 숙청 등 신비주의 종파가 지니는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독일의 나치가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신비적 형태로 표현한 경우나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대화혼(大和魂)', 한국의 유신 시기의 '신바람' 등이 그러한 예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주의는 신비주의를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신비주의가 대중의 불안을 신비적 방식으로 정화(katharsis)함으로써 전체주의가 야기한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종말론은 개인과 세상에서 인간의 합리적 지성에 의해 설명될 수 없는 신비한 체험이나 예견 능력에 기반해 세계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은 '진보의 부재'로부터 파생된 인간의 불안에 그 토양을 두고 있다. 물론 인간 지성이 세계의 극히 작은 부분밖에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신비한 체험이나 예견 능력이 일상적인 인간 지성을 뛰어넘는 예지력을 지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신비한 체험이나 예견 능력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연결되어 비관적 종말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근대 이후에는 이성을 지닌 인간의 노동에 의해 인류가 진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 사상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세기말과 맞물려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사회주의의 붕괴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하나의 새로운 대안의 소멸을 의미한다. 최근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 신비주의의 등장과 선진 서구 사회에서의 종말론적 사상의 유행은 다름 아닌 이러한 인류 진보에 대한 대안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회주의가 붕괴했을 때 사회주의 국가의 시민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해 낙관했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의 승리를 찬양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을 때 독일은 환희에 차 있었다. 그러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옛 사회주의 국가는 새로운 빈곤의 문제로 허덕이고 있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삶의 의미와 자유의 상실'을 재확인하고 있다. 거기다가 각 국가들이나 민족 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전 지구적인 환경 파괴와 에너지 고갈 등 수많은 난제들이 중첩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세기가 끝나 가고 있다. 청년들은 마약, 에이즈, 가상적 사이버 공간, 경쟁적 소비 문화 등에 둘러싸여 생의 목적을 잃어버릴 정도로 불안과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이런 세기말적인 혼돈의 상황에서 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현실에서 구하지 않는다면 신비적 경향에 빠질 위험성은 필연적으로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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