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우리가 안 지키는 우리말

160여개나 된다는 세계의 여러나라중 자기나라의 글이 만들어진 기념일을 갖고 있는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대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무려 500하고도 53번째 맞는 한글날 아침에 갖는 단상(斷想)이다. 자신들의 글과 말을 소중히 지키는 것은 철창속에서 열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비유한 작가도 있지만 우리는 이 삭막한 국제사회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너무도 생각없이 살아온게 아닌가하는 부끄러움에 이 아침 얼굴이 붉어진다. 중국외교부는 지난 95년부터 매주 정례뉴스브리핑에서 영어통역과정을 없애버렸다. UN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말이니 중국어를 모르면 질문도 하지 말라는 언어패권주의적 발상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비난할 것 까지야 없을 것 같다. 우리의 글과 말은 지난 수천년동안 한자를 빌려 써온 빚을 털고 영어.일어 등 외래어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할 가볍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지난 91년, 한글날이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되면서부터는 놀면서 반성하는 날이 하루 줄어든 탓인지 그나마 1년중 하루 반성하는 것조차 처삼촌묘 벌초하듯 슬렁슬렁 넘어갈 뿐이다. 통신언어에서 서울은 '설'로, 통신장애는 '통장'으로, 최고는 '짱'으로 자리를 굳혔으니 이러다간 젊은이들의 말에 통역이 필요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자기의 말과 글에 대한 확신없이 대충 살아온 기성세대들의 자업자득이 아닌가 싶다. 우리말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개발하기위해 정부와 언론, 특히 방송이 앞장서야 마땅하지만 정부는 입만 열면 예산타령뿐이다. 문화부 국어정책과의 올해예산은 고작 19억원, 이 돈으로 전문인력을 키우고 체계적인 연구를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 기대난이다. 방송언어는 두고라도 프로그램 이름만도 대학졸업자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외래어뿐이다. 일본어 잔재를 없애기위해 매달 시험까지 치르는 한 건설현장의 근로자들의 노력이 무척 돋보인다.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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