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인간에 대한 예의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보면, 유태인을 잔인하게 살상했던 나치에 대해 작중 화자(話者)가 일종의 향수로서 회상하는 부분이 나온다. 유태인 친구들을 가스실에서 잃기조차 한 작중 화자의 이러한 회상은 그러나 최악의 시대에 대한 정신나간 그리움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이 세상은 결국 무슨 짓이든 냉소적으로는 허용되어 있기에'느끼는, 도덕이 전도된 세계에 대한 냉소적 이해의 일환인 것이다.

화자의 말대로 우리네 세상에서는 무슨 짓이든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인 전쟁조차도 어떠어떠한 명분하에서 이 지상에서는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러나 세상이 제아무리 모진 일들로 가득 차 있다 할지라도, 일어나서는 안될 일은 일어나지 않게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동족상잔의 비극 하에서 타국 군에 의해 저질러진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은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기에 더욱 가슴아픈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와 비슷한 예가 마산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고 하니 더욱 경악할 일이다.

전후(戰後) 세대로서 전쟁의 참상을 전혀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사실 전쟁 자체를 이해하기에도 버거운 지경이다. 그러니 하물며 우방에 의한 대학살임에랴! 양민을 보호해야 할 군이 오히려 무력한 그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 이 사건은 전쟁의 참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어이없는 비극이기에, 무어라 말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목적을 위해 양민의 목숨을 벌레만도 못하게 여긴 비인간적인 만행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 밖엔….

인간에 대한 예의가 도무지 지켜지지 않은 이 대학살사건은 '세상은 결국 무슨 짓이든 냉소적으로는 허용되어 있다'는 말로는 결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일이기에,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희생자들에 대한 예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라도 있었던 일을 시멘트 아닌 그 무엇으로도 함부로 덮어버리는 무례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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