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방가(반가워요). 난 고딩(고교생)인데 지금은 겜(게임)방. 나이트 갈수 있어. 휴대폰번호는 011…"
11일 오후 5시 대구시 중구 동성로 모 게임방. 10여명의 여고생들이 '채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듯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 들어가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다.
20여분이 지나자 한 여학생의 핸드폰에 벨이 울렸다. 이 여학생은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던 남학생과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얼마뒤 한 남학생이 두리번 거리며 게임방에 들어섰다. 그는 채팅으로 약속한 여학생을 찾아 인사를 나눈뒤 함께 게임방을 나섰다. 번개(즉석만남)팅이 청소년은 물론이고 채팅 이용자들 사이에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
인터넷 채팅이 '신종 전화방' 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몇달새 전국에 30여개가 넘는 채팅 전문 사이트가 생겨났고 회원수가 300만명이나 되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이들 사이트에는 원색적인 대화나 원조교제, 성적인 만남을 전제로 한 대화방들이 하루에도 수십개씩 만들어지고 청소년과 직장인 가정주부까지 빠져들고 있다.
대구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모 채팅 사이트. 대화방을 열면 '색녀.까진년.섹시걸. 널 원해, 함하자'등 음란성 대화명이 가득하다. 성 경험은 몇차례이고 어떤 체위를 좋아하느니 따위의 퇴폐적인 대화가 끊임없이 오고갔다.
모여상 3학년 김모양(19)은 "매일 2,3시간 정도 채팅을 하는데 대화 내용 대부분이 남자친구나 성적 호기심에 관한 것"이라며 "친구중에는 채팅으로 만난 아저씨와 원조교제를 하는 애들도 있다"고 했다.
성인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일부 30, 40대 남성 이용자들이 주부, 직장인 등 여성 이용자들에게 채팅 구애(?)를 하면서 '한번 만나 깊은 관계를 갖자'고 요구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3개월 전부터 시작한 채팅이 삶의 보람(?)"이라는 직장인 김모씨(31)는 "채팅을 통해 고3부터 20대 직장인까지 10명을 사귀었다"고 밝혔다.
누구나 손쉽게 인터넷 채팅을 할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됐지만 이용자에 대한 '안전책'은 전무한 실정. 음란성도 문제지만 '채팅 중독'을 호소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가족상담센터 임종열(63.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6명의 청소년이 채팅 중독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데 현실감이 떨어지고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며 "채팅 중독은 일종의 정신적인 가출 현상으로 보면 된다"고 밝혔다. 또 임교수는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보기엔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해 가정은 물론 학계나 정부도 이 문제에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李宰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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