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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漫畵)의 왕국 일본. 젊은이들의 '오락물'에 불과했던 만화를 소설이나 영화가 누리는 사회적 지위로 끌어 올린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95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서 팔린 모든 단행본과 잡지 판매액에서 만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아이슬란드 국민총생산의 두배인 70~90억 달러어치의 만화를 생산하고, 1인당 연평균 15권의 만화를 읽는 나라 일본. 일본은 만화에 파묻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출신 만화전문가 프레드릭 쇼트의 '이것이 일본 만화다'(다섯수레 펴냄)는 일본 만화와 만화산업에 대한 치밀하면서도 재미있는 일본 만화론이다. 일본 만화에 대한 20여년동안의 연구와 방대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쓴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 만화의 속내를 깊숙이 들여다 보고 있다. 흔히 일본 만화라고 하면 외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유해 만화의 대명사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은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일본 만화에 대한 시각을 교정해 준다.

18세기부터 19세기초에 걸쳐 일본에서 성행했던 토바에(鳥羽繪)와 기뵤시(黃表紙) 등 일본 만화의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일본 만화와 다른 나라 만화의 차이점, 산업적 측면, 사회문화적 영향력, 작가론과 작품론, 일본 만화의 미래 등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일본 만화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들어보자. 총리를 지낸 미야자와 기이치가 지난 95년 언론매체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신문이나 잡지가 아니라 만화주간지 '빅 코믹 스프리츠'였다. 그가 유력 일간지나 시사잡지를 제쳐두고 만화주간지를 선택한 이유는 명백하다. 젊은 직장인과 잠재적 유권자 140만명이 애독하는 영향력있는 잡지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가장 힘있는 출판사들 사이에서도 팔리지 않는 문학작품보다는 만화 관련 책에 더 주력하고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만화 매체가 가진 잠재력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이것만으로는 일본 만화의 정체를 다 파악할 수 없다. 저자는 생산부터 유통과 소비까지 일본만화산업의 밑바닥을 훑어가고, 주요 작가와 작품, 독자층 등 상세한 분석을 통해 일본 만화의 전모를 드러낸다. 만화산업의 기폭제인 다양한 만화잡지와 일본에서 매년 개최되는 만화박람회의 원조격인 '고미케토', 대규모 만화박람회인 '슈퍼 코믹 시티' 등 만화시장의 현장을 찾아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일본만화에 대한 전망도 빼놓지 않는다. 성장신화에 짓눌린 일본만화는 너무 오랫동안 걱정없이 지내왔고, 허리 주위에 군살이 너무 많이 붙었다고 진단한다. '질보다 양'이라는 질병에 걸려 '더 특별한' '더 재미있는' '더 우수한' 독자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일본인들은 만화에 열광할까? 저자는 어떤 사회학적 미사여구도 필요없이 '만화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오락거리이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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