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25년을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독일에 유학을 가서도 아파트에서만 살았으니 내가 살아온 삶의 반 이상을 아파트에서 보낸 셈이다. 사실 철들고 나서는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이 정도면 나는 아파트의 생활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를 못하다. 나의 꿈은 예나 지금이나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에서 사는 것이다.
내가 아파트를 못 떠나는 것은 오로지 아파트가 주는 물질적 측면 때문이다. 아파트는 단독주택보다 편리한 점이 많다. 경비원이 있어 집을 지켜주고, 주변에 생활 근린시설이 적절히 갖추어져 있어 불편함이 적다. 나아가 아파트단지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과 달리 얼마든지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어 판을 다시 짤 수 있다. 사실 불편한 점이 있을 때 나는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판짜기를 다시 하기 보다는 더 좋은 조건을 갖춘 아파트로 이사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 방법이 다른 사람과 피곤하게 부딪힐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경제적 투자가치도 있어 좋다.
그러나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될수록 아파트생활을 청산하고 전원주택에 보금자리를 꾸리고 싶은 욕구는 더욱 더 강렬해지고 있다. 주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현상은 나만에 국한되는 경험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파트로부터의 탈출에 항상 실패한다. 도시의 바쁜 일상이 나를 다시 아파트에 묶어두곤 한다.
내가 아파트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이유는 시멘트건물이 주는 삭막함, 주위와의 부조화, 이웃이 없는 단절된 생활, 아파트관리를 둘러싼 골치덩어리 일 등등 무수히 많다. 그렇지만 이를 한마디로 옮기면 아파트에는 내가 정을 붙일 생활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가 사는 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명절 때마다 너도나도 끔찍한 교통지옥을 감수하면서도 시골 고향을 찾아 떠난다. 모두들 어우러져 살던 마을문화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채 연례행사처럼 아파트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돌아와 보면 여전히 아파트에 갇혀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아파트를 떠날 수 없는 것이라면, 이제는 탈출을 꿈꿀 것이 아니라 마음 한 자락을 붙잡아 아파트를 함께 어우러져 사는 마을로 만들어 볼 일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나나 내 자식에게 정든 고향이 될 수 있도록 이웃과 어우러져 한바탕 질펀하게 놀아야겠다.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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