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부자와 대학

지난해 미국 대학을 방문하면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보스턴의 하버드대학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고색창연한 도서관이 있는데 그 유래는 이렇다. 19세기말, 요즈음 표현으로 유럽을 배낭여행하고 배편으로 귀국하던 부잣집 외아들 하버드 재학생이 있었는데, 보스턴 항구에 배가 진입할 무렵 갑작스런 폭풍으로 배가 뒤집혔다. 승객들 대부분은 헤엄쳐 나와 목숨을 구했으나 수영을 못하는 그 아들은 마중나온 어머니가 안타까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지고 말았다. 그 어머니는 자식을 기리기 위해 하버드대학에 도서관을 건설, 기부하면서 조건을 하나 달았다. "모든 하버드 재학생에게 수영을 가르치라"고 말이다.

애틀랜타에 있는 에모리대학에는 그 흔한 미식축구 운동장이 없다. 20세기초, 에모리대학에 다니던 어느 부잣집 외아들이 동네 친구들과 미식축구를 하다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단다. 그 아버지는 사랑하던 아들을 기리기 위해 에모리대학에 거액을 기부하면서 역시 조건을 하나 달았다. "에모리대학에는 미식축구장을 짓지 말라"고 말이다.

--기부하면서 내건 조건은...

미국에는 학교 설립자라든가 거액의 기부자 또는 학교의 명성을 드높인 학자의 이름을 딴 대학들이 많다. 하버드대학이 그렇고, 스탠포드대학이 그렇고, 남부의 하버드로 자부하는 휴스턴의 라이스대학이 그렇다. MIT의 경영대학원은 슬로언 경영대학원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GM을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알프레드 슬로언 회장이 제공한 기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에모리대학의 경영대학 건물 정면에는 건물 기증자인 코카콜라의 전설적인 최고경영자 로베르토 고이주에타의 이름이 크게 양각되어 있다.

카네기 멜론대학을 설립한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는 1835년 영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와 철도.철강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카네기는 1911년 3억5천만 달러를 출연, 카네기재단을 설립하고 광범위한 사회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카네기재단은 미국 최초의 3섹터로서 정부가 아닌 민간 조직이 대규모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공익에 봉사하는 활동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카네기의 인생철학은 지금은 박물관이 된 에딘버러의 생가 기념비에 새겨진 그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기업인의 일생은 부(富)를 쌓는 시기와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시기로 나뉜다. 돈을 가지고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시기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미국에는 스탠포드나 카네기처럼 특정 인물이 대학 전체가 들어설 부지를 제공하거나 대학의 상징적 건물을 짖는 경우도 많지만, 서로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기부자들이 뜻을 모아 영재를 기르는 터전을 마련하기도 한다. 캠퍼스 가운데로 지하철이 다니는 보스턴대학교는 수년전 최첨단 시설을 갖춘 경영대학을 신축했는데, 경영학과장을 맡고 있는 후배교수는 필자에게 칼리지 빌딩 투어에는 60분짜리와 90분짜리 두 코스가 있는데, 어느 쪽으로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 차이가 뭐냐고 했더니, 그것은 100여명이나 되는 기증자에 관한 설명으로서 백금판, 금판, 은판, 그리고 동판에 새겨진 기증자의 이름과 경력, 그리고 기부와 관련된 감동적인 사연을 이야기함으로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도 기부하고 싶은 생각이 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클레어몬트대학교의 경영대학은 최근에 대학원의 명칭을 피터 드러커의 이름을 따서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으로 개명했고, 건물도 새로 지었다. 건물 입구 기둥의 동판에는 건물신축에 기부한 회사들의 이름이 음각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는 GM, 포드, IBM, 모토롤라 등 미국기업 뿐만 아니라 도요타, NEC와 같은 일본기업의 이름도 있었다.

--걸맞는 감사표시해야

누구나 동의하듯이 21세기는 지식사회이다. 대구가 21세기 지식사회에서도 세계적인 도시로 살아남으려면 대구의 대학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 지역에 사는 부자들, 기업인들, 그리고 지역사회에 준 것보다는 받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경쟁력을 향상하려고 노력하는 대구.경북의 대학에 기부해야 한다. 진정 고향을 그리고 지방을 사랑한다면 말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선행이나 기부행위를 숨기고 음덕을 강조한다. 이제는 자신의 봉사활동과 기부행위, 즉 양덕을 떳떳이 내세울 때도 되었다. 대학 또한 기부자의 뜻을 기리고 그것에 걸맞은 감사의 표시를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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