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편견

옛 성현들께서는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일의 어리석음에 대해 익히 밝히셨지만, 나 같은 범상한 사람에겐 그 말이 사실 버겁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가 누구건 간에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요모조모 뜯어보고 그 대상에 대한 인상을 각인지워버리고 마니, 판단은 커녕 편견을 갖지 않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런 나의 속성 탓이었을까, 어머니가 잘 알고 지내시는 동네 어른에 대해 나는 예의 그 편견으로 인해 한껏 오해를 한 적이 있다. 그녀는 욕심이 많고 성질이 암상궂어 사람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지 못했기에,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가 편견을 가지는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는 전혀 좋은 이웃 같지 않은 그녀와 지나치게 친하게 지내셨다. 사람이 욕심스러우니 만큼 가까이 지내다 보면 손해나는 일이 많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로 소소한 일에서부터 금전적인 문제에 이르기 까지 손해를 보았기에, 나는 어머니가 그녀와 가까이 지내지 않기를 은근히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욕심사나워 보이던 그녀가 실은 후처로 시집을 와 남의 자식을 거둬 먹이며 살았을 뿐 아니라, 부모 잃은 조카까지 보살피며 살아온 착한 팥쥐엄마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잇속만 계산한 내 피해의식이 자못 부끄러웠다. 욕심스런 인간은 그 인생도 그렇고 그렇겠거니 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그녀는 내가 생각도 못한 파란만장한 인생을 꿋꿋이 견뎌온 또순이 아줌마였던 것이다.

험한 세상을 모질게 살아온 탓에 그녀의 겉모습이 그렇게 팥쥐어멈으로 변해버렸긴 했어도, 그녀의 생의 이면에 숨은 모습이야말로 추함 뒤에 가려진 진정한 휴머니즘이 아닐까. 미추(美醜) 뒤에 가려진 진실을 보려는 노력없이 사람을 함부로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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