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세대 노인 다시보기-(3)전환기 노인 여가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에 위치한 대구시 노인종합복지회관. 짙게 낀 새벽 안개 사이로 서성대는 노인들이 보인다. 새벽 일찍 게이트볼을 즐기거나 탁구·당구를 치려고 노인회관의 개관(오전 6시)을 기다리고 있다. 곧 이어 꼬리를 물고 찾아온 1천여명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택견교실·댄스스포츠·시조경창·컴퓨터 교실 등에서 여가생활을 즐긴다.

이곳에서 4년전에 개설한 택견교실의 창립회원인 김영환(71) 할아버지는 빨간띠(3단계)로 격파 시범까지 보일 정도로 상당한 수준을 자랑한다. 복지관의 한켠에서는 수백명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은 복지관이 떠나가도록 가요를 열창한다. 이처럼 가요를 배운 할아버지 할머니 가운데는 실버공연단(임영찬)을 조직, 양로원이나 요양시설로 위문공연을 다니고 있어서 여가로 배운 예능이 봉사활동의 무기(?)로 변신한 셈이다.

"노인들이 가요를 배우면서 노년의 외로움을 털고 친구도 사귀면서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는 정영애 양친회 전무는 3년전 대구시내에서 처음으로 할머니 예능 경연대회를 열었다.

양친회가 주최가 지난 7일 대구시청소년수련원에서 연 제3회 할머니예능경연대회에는 무려 19팀(2팀은 봉사)이 출연, 4시간 동안 캉캉·어우동춤·부채춤·장고춤을 추면서 일년 동안 닦은 기량을 맘껏 펼쳤다.

"내년에는 할아버지팀들의 참여 방안도 고려하고 있으며, 노인들이 노후를 그저 즐기면서 끝낼게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 뭔가 기여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는 정씨는 사회적인 역할에서 벗어난 노인들의 여가 생활이 우리 사회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노인복지회관 할머니들이 정기적으로 김치를 담고, 메주를 쑤어서 그 판매 수익금으로 불우 노인들을 돌보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는 정씨와 강기표 대구노인복지회관 과장은 밝힌다. 비교적 여유있는 노인들이 평생 닦은 실력으로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더 못한 이웃을 위하려는 생산적인 노인복지를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시내의 노인 여가 시설은 노인복지회관, 각 대학 사회교육원이나 평생교육원, 사회문화대학(학장 이창언), 달서구청과 대구가정복지회가 내년에 선보일 노인대학, 경로당, 종교시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평생 동안 일만 하고 노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오늘날 '전환기 노인'들은 본격적인 여가생활을 준비하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균수명의 지속적인 연장으로 여러가지 노인문제가 대두되고, 본격적인 노인여가 개발이 과제"라는 정재호서구제일종합사회복지관장은 노인 가운데 중하위층에 속하는 경로당 노인을 위한 여가 지원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한다.

대구시 변두리에 있는 한 경로당. 60~80대 노인들이 열댓명 모여 있다. 이들은 따뜻한 구들목에서 몸을 녹이며 집 얘기, 동네 얘기로 하루를 연다.

군대나 마찬가지로 '짠밥'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는 경로당에서는 60대 노인이 담배 심부름을 가야할 정도로 영계(?)이다.

영계 노인은 당연히 경로당의 식사당번. 식사가 끝나면 경로당에서 펼쳐지는 여가생활은 고스톱·화투놀이·장기판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뭐, 집에 있기도 그렇고 심심하니까 가지. 별로 배울 것은 없어…"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47%가 여가를 보내는 곳으로 집계되는 경로당은 1998년말 현재 전국에 3만3천485개, 약 140만명이 이용하고 있다(보건복지부, 1999년 자료). 1997년말 현재 대구에는 886개, 경북에는 3천655개의 경로당이 있다.

"80년대말 이후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경로당이 노인들의 여가 욕구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보다 단순한 만남, 오갈데 없는 노인들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비판도 있다"고 모선희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교수는 말한다. (계간 아산, 1999년 추계호 제39쪽)

대구가정복지회 윤주희 과장은 "경로당 노인들의 59.5%가 건강관리프로그램을 원했는데 현행 경로당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하는 비율은 10% 수준에 그친다"고 밝혀 노인들의 여가 욕구를 경로당들이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으로 적시했다.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노인들의 여가 욕구와 경로당을 중심으로 한 신토불이형 노인여가문화 개발이 시급한 시점에서 대구가정복지회(대표 송정한)의 경로당활동지원센터는 성공적인 여가 개입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다.

북구에 이어 달성군이 경로당 활동지원센터를 시범적으로 가동하고 있으며, 서구, 동구가 대구가정복지회의 경로당 활동지원센터의 도움을 받기로 확정했다.

"노후의 여가 선용은 건강을 유지·증진시켜주고, 불안한 정서생활에 안정을 주어 노년기의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 노인복지의 3대 과제 중의 하나인 건강·경제에 못지않게 여가생활에 대한 공공과 민간의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고 김형수 호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9일 영남대에서 열린 노인학세미나에서 강조했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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