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인사동과 봉산동

인사동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늪'이라고 말한 친구가 있다. 나도 그 늪에 빠졌었다. 첫 직장이 인사동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점심 시간에 와이셔츠 차림으로도 가고 퇴근 할 때도 별 약속이 없으면 인사동을 거쳐서 퇴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그림을 참 많이 봤구나 싶다. 인사동 덕분에 서울이라는 도시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전시 저 전시를 다니며 개막하는 날 초대손님들에게 주는 음식도 많이 먹었는데, 요즘 친한 화가들에게 그 때 얻어 먹은 값을 앞으로 두고두고 하겠다고 우스갯 소릴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화랑이 소장하고 있는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보는 재미로 다녔는데 미술 교과서나 화집에서 볼 수 있던 그림의 실물을 보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인쇄 상태도 별로 좋지 않던 시절의 인쇄된 그림과 실물의 차이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림보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고부터는 대가나 신인을 가리지 않고 인사동 전시는 거의 빠짐없이 봤는데 방송사로 직장을 옮기고는 한 동안 가지 못해서 인사동은 늘 그리운 동네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인사동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다양한 먹을 거리가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든 다는 것이었다.

봉산 문화거리는 어떤가. 표구점이나 인쇄소 몇 군데밖에 없던 거리가, 화랑이라도 밀집해 있고 '문화거리'라는 명칭으로 불릴 정도로 발전한 것은 그래도 대견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갈 만한 공간이 화랑 외에는 별로 없다. 이렇게 되면 화랑도 미술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나 미술과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나 드나들게 된다. 살아서 꿈틀대는 거리가 되지 못한다. 화랑 사장 한 분도 문화거리 뒷 골목이 어떤 형태로건 변해야 문화거리가 사람들로 가득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공감이 가는 말이다. 향수 가게에 들어갔다 나와도 향내가 몸에 배는 것 처럼 그냥 놀러 오더라도 '문화거리'에 자주오면 '문화'의 향내가 몸에 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봉산 문화거리가 '늪'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구방송 FM제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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