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8월2일 고령교(경북 고령군 성산면 득성리) 폭파 당시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미군에게 당부, 폭파를 늦춰 많은 인명을 구해낸 고 김상근목사(당시 45세, 73년별세)의 숨은 공로가 최근 미군학살 규명운동과 더불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김목사는 당시 고령읍 지산리 고령읍 교회에서 목사로 있으면서 84세된 노모가 위독해 고향에 와서 노모를 업고 피란에 나섰다.
집에서 약 1㎞쯤 떨어진 고령교에 도달했을때는 미군들이 고령교 폭파를 위해 고령교 통행을 차단해 피란민 수천여명이 다리 입구에 몰려 다리를 건너게 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는 것.
서울 수유리에서 살고있는 다섯째 딸인 김진희(63)씨는 "아버지께서 고령교앞에서 다리를 차단하고 경계를 서고 있는 무장 미군에게 다가가 피란민들이 교량을 통과하도록 설득한 끝에 수천명의 피란민들이 통과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목사는 아무도 미군과 대화를 못했으나 대구 계성학교, 대구 성경학교, 평양신학교를 수료하며 익힌 영어로 대화가 가능해 미군이 김목사의 부탁으로 폭파시간을 늦춰 수많은 인명을 구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3월24일 고령군 성산면 삼대리에 세워진 김목사 기념비에도 고령교 폭파시간을 연장시키고 수천명의 인명을 구해냈다고 적혀있다.
국민의보 대구지사에서 근무하는 막내아들 김광영(55)씨는 "아버지가 미군과 대화를 할 수 있었던 덕에 많은 피란민들이 고령교를 건널 수 있었다고 말했었다"고 했다.
당시 고령교 폭파에 앞서 피란중 고령읍 장기리 금산재에서 고령교를 향하던 김목사의 장녀 영순(당시 27세)씨는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김목사는 1920년 고향에서 사설학원을 열어 농촌의 문맹퇴치에 나섰으며 48년간 목사로 재임하며 해방후 국민회 고령군지부장을 역임했으며 신명여중고 이사, 대한예수교 장노회 경북노회장 재임중 73년 6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 98년 3월24일에는 김목사기념사업회에서 김목사의 고향 선산면삼대리에서 김목사 기념비건립 제막식과 기념관 준공식을 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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