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12회 매일여성한글백일장 장원 수상작-산문(여고부문)-아빠와 눈-정수정

사람들은 대부분 겨울하면 추위와 눈을 떠올린다. 나도 그 사람들 중에 한명이다. 겨울에 눈이 안오면 음식에 간이 되지 않은 것 같은 밋밋한 느낌이 든다. 내가 어릴 적엔 새하얀 함박눈이 많이 쏟아졌었는데…….

자고 일어나 바라본 세상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온 마을이 하룻밤동안 동화속에 나오는 세상처럼 변해 있었다. 마당엔 벌써 일어나신 아빠께선 눈을 치우고 계셨다. 그러는 동안에도 하늘에선 큼지막한 눈송이들이 펑펑 쏟아졌다. 더 이상 치우기가 힘이드셨는지 아빠께선 포기하고 방에 들어오셨다. 그리곤 눈이 너무 많이 온다며 걱정을 하셨다. 근데 난 오늘 하루 신나게 놀 수 있겠다는 생각에 빠져서 마냥 좋기만 했다. 점심때가 지나서 두터운 옷으로 무장을 하고서 바깥으로 나왔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내 얼굴을 마구 괴롭혔지만 다시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동네 아이들과 눈싸움으로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쯤 누군가 눈사람을 만들자고 소리쳤다. 둘씩 짝을 지어 눈을 굴리고, 나뭇가지를 주워오고 분주하게 움직이다 보니 눈사람이 하나 완성되었다. 아이들은 서로 좋다고 손뼉을 쳐 댔다. 그러다 갑자기 두 명이 눈사람이 자기꺼라고 우기며 싸우기 시작했다. 난 다른 아이들과 그 싸움을 말리려다 도리어 같이 싸우게 되었다. 결국 아이들은 모두 울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울고 들어온 나를 보고 아빠께선 무슨 일이냐며 물으셨다. 나는 눈사람이란 말만 되풀이 했다.

아빠께선 대충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셨는지 나의 손을 잡고 언덕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곤 그곳에서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난 울음을 그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눈사람 얼굴 만들 것을 주워 모았다. 그리고 속으로 '우리 아빠가 더 예쁜 눈사람 만들어 주실거다. 약 오르지?' 하며 다른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있었다. 나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던 아빠의 계획은 성공한 것이다. 아빠께 일부러 동네 아이들과 만든 눈사람보다 더 큰 것을 만들어 주셨다. 그리곤 눈사람 배에다가 수정이꺼 라고 큼지막하게 써 주셨다. 나는 좋아서 어쩔줄 몰랐다. 그 모습을 보신 아빠께선 기분이 좋으셨는지 빙그레 웃으시며, 사진을 찍어 주신다고 하셨다. 나의 눈사람 옆에서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온통 눈뿐이었던 그날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7살의 그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가끔있다. 하지만 난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고, 아빠께서도 이젠 히끗히끗 흰머리가 생기셨다. 눈사람을 놓고 싸우던 그 때,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난다. 잘 지내다가도 금세 토라져서 울고, 또 친해지고 어쩌면 그 때가 가장 솔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집에서 밥 먹을때만 잠시 얼굴을 볼 뿐 아빠와 함께 이야기하고,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드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집에 오면 내방에서 꼼짝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빠도 바쁘시다. 왠지 나와 아빠의 거리가 멀어진듯한 느낌이다. 그때처럼 지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올해 겨울은 조금 일찍 오는 느낌이다. 어제도 세찬 바람이 마구 불었다. 이번엔 눈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17살이 아닌 7살의 수정이로 돌아가 아빠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거다. 그리고 눈사람 배에다가 이렇게 쓰고 싶다.

'수정이랑 아빠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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